역사를 알게 되면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38권 PDF전문보기

역사를 알게 되면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나

여러분, 귀빈들 모시고 손님 대접하기도 힘든 겁니다. 이거 얼마나 자유스러워요. 그래 높이 올라갈 줄도 알아야 되지만, 평면이 될 줄도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블루진을 입고 트위스트를 추는데 나도 욕할 줄도 알지만 트위스트도 출 줄 안다구요. 「아이구」 왜 아이구예요? 병사가 싸우는 데 있어서, 전쟁 마당이 벌어지면 장군 싸우는 방법이 다르고, 졸자 싸우는 방법이 달라요? 저쪽 졸자들이 총 쏘면 같이 쏴야 돼요. 마찬가지라구요.

그건 무엇을 말해요? 높고 낮음이라는 것이 내용이 다를 뿐이지 외형은 같아요. 알겠어요? 문선생이라고 뭐 별거 아니라구요. 눈도 둘이고…. 요 얼굴이 몇 가지예요? 가짓수는 네 가지이고 구멍으로 말하면 일곱 구멍이예요. 안 그래요? 간단하다구요. 내가 코 하나 더 있는 것도 아니고, 눈 하나 더 있는 것도 아니예요. 마찬가지예요. 그렇지만 내용이 달라요, 내용이. 내적인 면이 다르다는 거예요. 자, 이런 얘기하면 끝이 없겠습니다. 자, 가자구요. 이제 알았어요.

여러분이 현재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돼요, 과거를. '이럴 수 있는 내가 과거에 그렇다 한 나로서 역사상에 나타나지 못했던고! 우리 조상들이 못나서 못 나타났던고! 그러면 무슨 곡절이 있어 못 나타났던고!' 오늘의 이와 같이 나타난 내 자신을 중심삼고 나타날 수 없는 내 자신을 탄식하게 될 때, 미래에도 나타낼 수 없는 나와 같은 후대의 역사가 될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인류사를 중심삼고 탄식하지 않으면 안 될 나를 발견할 거라구요. 이런 마음을 누가 갖다 주느냐? 그건 우리 조상을 통해서 물어 보아도 몰라요. 확실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성경을 몇천 번 탐독해도 몰라요. 뭐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경서를 아무리 탐독을 하고 암송을 해 가지고 음미해도 몰라요. 그 길은 오로지 한 길밖에 없어요. 두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수직선은 이 우주에 하나밖에 없어요. 둘이 있으면 수직이 아니예요. 그것은 두 존재 형성을 논하는 거라구요. 그래서 이원론이나 일원론이 철학에서 문제가 되어 왔다구요. 축은 하나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원론 이상 구형을 형성해야 된다는 그런 논리는 우리 마음 자체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 자신이 둘이 되어서는 안 돼요. 지금 내 자신을 보게 될 때 어떻게 되어 있어요? 몸과 마음이 둘 같아요.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마음이 중심이 되고 몸뚱이는 돌아야 됩니다. 마음은 축이에요, 축. 축과 같아요. 마음을 끌고 다니는 몸뚱이를 가진 사람은 안 되는 거예요. 그는 악한 무리예요. 마음이 중심 자리에 있어 가지고 몸뚱이를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천리에 한 축이 있으니 그 천리의 축 앞에 내가 어쩌다 저쩌다 이렇게 떨어져 이 환경에 와 있으니 이 축을 따라가 가지고 접붙일 수 있는 길을 동경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나를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서양역사가 다르고 동양역사가 다릅니다. 왜 달라요? 하나의 축을 중심삼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 물리학이면 물리학의 모든 공식, 그 이론이나 논리가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과학 공식의 과정이라는 것은 역사시대의 어떤 사람이 풀더라도 같은 공식으로 풀어야 하고, 그 공식을 통해서 같은 답을 내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는 왜 이러냐? 근본 축의 공식적 기반 위에 서 있지 못하는 인간이 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응? 「예」 그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리에 선 거예요. 또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지만, 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거예요. 될 수 있는 길은 나는 못 하더라도 환경이 밀어서 그곳에 가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거예요.

이 지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인간을 중심삼고 이와 같이 내 마음이 수긍하는 자리에 서서 '나는 인생의 행로에서 승리하였고, 천상천하에 모든 사람은 나를 중심삼고 따라가며 살지어다! 아멘!'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예수님도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하셨지만 내가 다시 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탄식을 남기고 갔습니다. 다시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이예요? 오늘 요러한 마음에 이 방대한 자기를 제일주의로 하여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적 자아권을 형성하는 그 욕망의 자리를 만민이 갖추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자리에서 가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런 목적을 남기고 있는 예수님이 다시 와야 된다는 말을 했다면 그 말은 타당성이 있는 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