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변하지 않는 사랑의 주인이기 때문에 귀하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1권 PDF전문보기

부모는 변하지 않는 사랑의 주인이기 때문에 귀하다

그러면, 오늘날 보물을 취급하는 사람과 보물 중에서 어떤 것이 귀해요? 영국 박물관에 가게 되면 517캐럿이나 되는 다이아몬드를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데, 그 귀한 다이아몬드하고 자기 남편하고 바꿀 수 있어요, 부인네들? 만약 바꾸라고 명령하는 선생이 있으면 그야말로 '당신 정신 나갔어!' 하며 가만히 있던 아줌마들도, 아무리 순한 아줌마라도 들이찰 겁니다. 안 그래요? 바꿀 수 있어요?

이렇게 볼 때, 사람이 절대 변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 오늘날 그런 생각…. 오늘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듣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나이 많은 분들도 오셨구만요. 그것이 문제예요.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자리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으면 이 우주는 인간을 뭐라고 했겠느냐?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은 타당한 결론인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불변의 존재로 나타났다 할 때,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십 배 되는 다이아몬드하고 바꿀 수 있어요? 천 배 만 배 되는 황금덩이하고 바꿀 수 있어요? 어림도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나예요, 나, 나. 여러분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자리에서 변치 않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변치 않는 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애기를 낳아 가지고 젖을 먹이는 부모는 그 애기가 언제나 자기 품에서 자라던 그 심정을 감응할 수 있는 자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90세가 넘더라도 70세 되는 아들에 대해서 '야야, 너 오늘 나가다가 차 주의해라' 그러고 있다구요. 그것 다 아시죠? 부모님이 왜 그러는 거예요. '어머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내가 70이 되어 며느리를 얻게 됐는데 나보고 나가다 길 조심하라구요? 어머니 돌았구만요. 아버지 돌았구만요' 그래요? 그 70이 된 아들도 '그럼요, 어머니. 매일같이 주의하지요' 그럽니다. 안 그래요?

왜 그러느냐? 부모님은 변하지 않는 사랑의 주인이 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이 천태 만태로 변해 나가서 별의별 짓을 다 하더라도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부모님의 사랑이 귀하다는 걸 알아야 돼요. 자기 여편네 사랑도 변하고, 남편 사랑도 변하고, 자식 사랑도 변합니다. 그 변하는 가정 환경 중에서 그래도 안 변하는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 꽁지만 남아 있습니다. 그것만은 남아 있다는 겁니다, 망하는 세상이지마는.

내가 댄버리에 있을 때 얘기를 하나 하지요. 댄버리에는 여름이 되면 비가 많이 옵니다. 봄에 축대를 만들고 운동장을 닦고 하느라고 불도저로 밀다가 장마철이 돌아와 가지고 한 3주일 동안 공사를 못하고 이것을 떡 세워놓았다구요. 그 기간에 철새인 물새가 와 가지고 불도저로 전부 펀펀하게 닦은 거기다가 돌들―자개 같은 돌이라구요―을 갖다 모아놓고, 어디에서 주워다가 놓았는지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깠다 이겁니다. 그 댄버리에 있는 죄수들이 시간마다 도는 길이 있다구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운동삼아 도는 길이 있다구요. 그 길에서 불과 3미터 됩니다. 나도 그 사람들과 같이 걷고 있는데 먼저 걸어가던 사람들이 서서 뭐 어떻고 쑥덕쑥덕하면서 손가락질을 하기에 보니까 물새가 알을 낳아 놓고 품고 있더라구요. 사람들이 거기에 서 있는데 물새가 발 앞에 와 가지고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날개를 뻗치고 죽겠다고 야단하는 겁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새들을 사랑합니다. 한국 사람과는 다르게 민도가 높기 때문에 새들을 보호하는 전통이 있다구요. 물새가 가까이 와서 척 비켜 가니까 거기에 또 떡 엎드리더라구요. 그다음에는 내 차례가 되어 쓱 가니,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틀림없이 나를 보더니 주춤하다가 날개짓을 하며 야단하는 겁니다. 그것을 누가 가르쳐 줬어요? 손으로 치면 당장에 즉사할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생사를 걸고 새끼를 보호하겠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 줬어요? 그것이 우연히 됐어요? 그것을 천년 만년 간다고 혁명할 수 있어요? 공산당은 사랑도 혁명할 수 있다고 하지만 동물이 새끼를 사랑하는 것을 혁명할 수 있어요? 말도 말라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도 동물적인 소성을 지니고 있는 그런 면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동물 입장에서도 그런데…. 동물보다도 차원 높은 인간은 사랑의 심정을 중심삼고 입체적으로 변치 않는 사랑을 자식에 대해서 하기 때문에 그게 귀하다는 겁니다.

90이 넘은 어머니가 70이 넘은 아들 대해서 염려하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아들은 그 말을 70년을 들었는데도 지치지 않아요. 지쳤어요? 70년 아니라 몇천 년 몇만 년을 들어도 지치지 않는다구요. 왜? 사랑의 어머님 말씀, 부모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에는 지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부모도 지치지 않지만 그 말을 대하는 자식도 지치지 않는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