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종교의 차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2권 PDF전문보기

철학과 종교의 차이

이렇게 볼 때 인간만 가지고는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철학이 도대체 뭐냐? 지금까지 철학은 인간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철학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다 세계를 이상화하는 유토피아 세계로 만들자고, 고차원적인 사상을 가지고 연구하던 사람들이 지금 사람 가지고는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사람 이상의 것이 있어야지 매일같이 변하는 사람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그래 성인들의 말이 그렇지 않았어요?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 이게 기가 막힌 말입니다. 인간을 그렇게 무가치하게 파헤쳐 버리고, 차 버릴 수 있어요? 파헤쳐지기만 하면 좋겠는데, 발길로 들이 채고 천대받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철학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신이 있느냐 없느냐 찾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변하는 사람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변치 않는, 그러니까 불변하고, 영원하고, 유일하고, 절대적인 존재의 가치의 내용을 세우지 않고는 변화무쌍한 인간세계의 개인의 무슨 사상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희랍의 종교철학의 역사로부터 숱한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별의별 짓을 다 해왔지만…. 중세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신의 절대주의적인 환경에서 세계가 통일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에 신을 확실히 알았더라면 세계는 통일되었을 겁니다.

그걸 중심삼고 그들이 부패한 나머지 그걸 배척하는 운동인 인본주의 사조가 출발했지만, 사람 가지고 안 되겠다 이거예요. 사람은 변하지만 흙덩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사람이 무시당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본주의 가지고도 안 되겠다 이거예요. 이놈의 사람은 전부 다 변해 가지만 그래도 물질만은 변하지 않는다, 황금만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본 거라구요. 그래서 황금 만능주의에 들어와 가지고 볼 때, 물본주의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인생의 가치는 완전히 상실권 내에 떨어졌습니다. 인간들이 뭐 이러고 저러고 했댔자 별거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 여기에서 도약을 하든가 막힌 담을 밀고 나가든가 해야 하는데, 도약할 수 있는 힘도 없고 밀고 나갈 수 있는 힘도 없어요. 그런 절망 상태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느냐? 그건 철학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미 실험을 해서 낙제하고 실패한 거예요. 그래서 종교를 가지고…. 그러면 종교는 뭐냐? 철학과 종교가 다른 것은, 철학은 신을 발견하기 위해 찾아 나온 게 아니라 길을 모색하다가 실패했고, 종교는 신과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이게 철학과 종교가 다른 점입니다. 종교는 신을 만나서 신의 이상에 맞게끔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생활이예요. 그 종교를 중심삼고 개인적인 이상생활, 가정적인 이상생활,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이상생활을 신과 더불어 할 수 있는 길이 미분명하기 때문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되면 문제는 다르다구요.

오늘 여기에도 종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왔겠지마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 이거예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요' 하겠지만 틀림없이 있다 이거예요. 오늘 이 시대의 문명은 공식(公式) 발전문명입니다. 공식을 연결시켜 발전하는 문명입니다. 맹목적인 관념에 젖어서 '그저 믿으면 구원얻지' 하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는 거예요. 그건 이미 다 실험을 필했어요. 아무리 철야기도하고, 아무리 했댔자 보라구요. 한국 기독교가 어디로 가나 보라구요. 세계 기독교가 어디로 가나, 수많은 세계 종교가 어디로 가나 보라구요. 땅에 떨어지고 만다 이거예요. 그건 선진국과 종교를 대표할 수 있는 기독교문화권의 중심인 미국이 이미 그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종교는 신을 만나 가지고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성경은 예언자를 통해 신을 만난 데서부터 기록한 겁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맺기 위한 기록이 구약성경입니다. 예수님이 위대한 것이 무엇이냐? 신을 만나 차원 높은 기준을 설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대하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신과 더불어 생활해야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 가운데 하늘과 더불어 같이 사는 사람 있어요? 또, 불교 신자 가운데 그런 사람 있어요? 유교 신자 가운데 그런 사람 있어요? 회회교 신자 가운데 그런 사람 있어요? 문제라는 거예요.

만일에 여러분이 신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게 문제예요. 내가 신을 발견했다면 신을 어떻게 모시고 다니겠어요? 그 신을 모신다고 '아이고, 우리 인간세상에 있어서 돈이 필요하니 복을 달라'고 할 때, 신이 좋아하겠어요? 복을 준다고 해서 돈으로 도와주는 신이 되겠어요? 또, 지식을 좋아하니 지식을 달라 할 때, 지식을 공급해 주는 신이 되겠어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권력을 달라고 할 때, 권력을 차지하게끔 해주는 신이 되겠어요?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것, 신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것 그게 뭐예요?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인간이 제일 좋아하되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수호하고, 자기를 믿을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관계를 맺어 좋아할 수 있는 것하고,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자리에서 관계를 맺어 좋아하는 것하고는 천양지차(天壤之差)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세계의 문제를 다 제쳐놓고 출발점이 나야. 나, 나예요.

그러면 나와 신과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백 년만 살면 지나가는 사람이고 신은 영존하시는 분이니, 신과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생활, 신과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곳, 신이 살고 싶은 세계, 내가 살고 싶은 세계가 같아야 합니다. 이것이 달라 가지고는 영원한 이상세계에 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1세기밖에 못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