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위에 사랑의 길을 가르쳐 준 종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2권 PDF전문보기

이 땅 위에 사랑의 길을 가르쳐 준 종교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종교 중의 어떤 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기독교만이 세계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연고인고 하니,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래 예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는 제일 가까운 거리의 내용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거예요. 여기서 아버지란 말은 가정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출발이, 안 그래요? 예수는 자신을 '신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중심이 뭡니까? 신랑 되신 예수님을 중심삼고 기독교인들은 신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형제라는 거예요. 한 형제라는 겁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구비한 종교는 기독교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외에는 없어요.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은 인격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동등할 수 있다는 것으로 신을 증명하는 겁니다. 무엇을 통해서?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예요. 그 하나님의 사랑은 막연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구체적 사랑을 어떻게 찾아가는 것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알기를, 하나님은 우리 교파 우리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파주의적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했지, 교파를 사랑한다고 안 했어요.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지, 교파를 사랑한다고 안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숙을 하고, 자아비판을 해야 돼요.

이런 일을 내가 강조하고 다녔기 때문에 반대도 많았습니다. 반대받던 레버런 문은 결국은 세계적인 판도를 넓혀 가고, 반대하던 기성교회 모든 교파는 점점 땅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옳은 것은 드러나는 것이요, 그릇된 것은 낙엽이 되어 떨어져서 거름이 되는 거예요. 그게 천지 이치입니다.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뭐라구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딴 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이 모든 식물계 동물계를 보게 되면 쌍쌍으로 되어 있어요, 쌍쌍으로. 그러면 왜 쌍쌍으로 지었느냐? 인간에게 사랑에 대한 교육을 하기 위해 자연계를 박물관같이 지은 거예요. 그래 놓고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최귀(惟人最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직 사람만이 귀하다고 말입니다.

그래, 뭣 때문에 사람만이 귀할까요? 뭘 중심삼고 하는 말이예요, 그게? 여러분과 같이 막된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이웃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세계를 망치는 사람입니까? 오직 사람이 최귀하다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그것은 천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앞에 사람만이 오직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하나의 주체자, 절대적인 주체자 앞에 단 하나로서의 상대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귀하다고 한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귀한 거지, 사람을 통해서 사랑을 찾을 수 없다면 귀하긴 뭐가 귀하겠어요?

아까 말하기를 변하지 않는 것이 귀하다고 했는데, 여기 참석한 여러분들은 변하지 않는 사랑의 길을 가고 있어요? 반성을 해보셔야지요. 남편이나 아내로서 사랑의 길, 혹은 가정에서 거느리고 있는 자녀들 앞에 부모로서 자식을 대하는 마음은 변치 않지요? 세상이 아무리 악한 세상이라도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만은 바르다고요. 그게 있기 때문에 오늘 구원의 역사가 가능한 거예요. 그게,그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걸 구체적으로 얘기할 시간이 없지만 말이요, 변하지 않는 사랑의 마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게 없으면 구원의 역사가 가능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으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기독교에서 사랑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고린도전서 13장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같이 있을진대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어요.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예요? 막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이어야 돼요. 천지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이 기쁘시기 위해서 지었는데, 무엇을 통해서 기뻐하려고 했느냐? 사랑을 통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