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되신 주님 앞에 세계적으로 승리한 신부가 돼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4권 PDF전문보기

신랑 되신 주님 앞에 세계적으로 승리한 신부가 돼야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이러한 두 갈래 길 가운데서 어디로 갈 것이냐? 지금까지 사망의 세계에서 포로가 되어 살면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이고 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무가치하게 살아온 과거를 후회하고 그러한 나를 청산짓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참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들 앞에 이러한 축복의 내용을 갖고 와 불러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평면 도상에 불러 놓고, 삼천만 민족 혹은 30억 인류를 지상에 세워 놓고 하나님은 공통적인 축복의 말씀을 할 때가 온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신부가 돼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신부는 개인적인 위치의 신부라고 알았습니까, 가정적인 입장에서의 신부라고 알았습니까? 신부는, 개인적 입장의 신부도 있을 것이요, 가정적 입장의 신부도 있을 것이요, 민족을 대표한 지도자의 아내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신부도 있을 것이요, 세계와 하늘땅을 총합한 신랑 되신 주님 앞에, 만군의 여호와의 독생자요 하나님의 황태자인 그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지를 호령하기에 결함이 없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어, 예수 믿으면 천당 가지. 신랑 되신 주님이 나를 찾아오겠지' 하고 있지만 그건 종의 부인의 입장도 못 되는 것입니다. 종의 부인의 입장도 못 되어 가지고 '오, 하나님의 아들 되신 구세주가 내 남편이다' 그러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개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련도 개인적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지니고 있는 사명과 가치는 민족적이냐 세계적이냐 혹은 개인적이냐에 따라 차이가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천적인 우리의 소망을 두고 볼 때도, 주님이 오늘날 신랑으로 오시는데 그 주님은 어떠한 신랑으로 오시기를 바라느냐? 나 하나를 대신하여 개인적인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으로 믿다가는 망합니다. 망해요, 망해! 그렇다면 개인적인 구원섭리를 노아 같은 양반을 통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개인을 구하고, 가정을 구하고…. 이렇게 점점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개인을 하나 빼 가지고는 수많은 시련을 주고 단련을 시켜서 한 고비를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신이 개인적인 부름을 받던 그 지긋지긋한 길을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는 꿈에라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지긋지긋한 고난길, 사탄이 그를 따라와서 다시는 시험할 수 없을이만큼 지긋지긋한 자리를 거쳐야 개인들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석같은 개인적인 기반 위에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가정 기반 위에 민족을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민족 기반 위에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국가 기반 위에 세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세계 기반 위에 하늘땅을 놓고 비로소 아버지가 거기에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이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 신랑 되신 주님이 전부 다 나를 위해…'라고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아는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이 재림하게 되면 천지를 수습하고, 공의의 법도를 따라 심판해 버리고, 그 천적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충신 열녀, 효자 효녀를 거느리고 새로운 개인을 수습하여 새로운 가정을 편성하고, 새로운 가정을 편성하여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를 편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시는 분이 주님인 것입니다. 이건 그저 주먹구구로 구름 타고 와서 다….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이 놀음을 하지를 않는다구요.

오늘날 이러한 우리의 신앙 관점에서 우리의 욕망과 소망이 무엇이냐? 대다수의 사람을 보면 뭐 천지를 지배하는…. 요즘 신문에 보면 케네디가 유명한데 '케네디 대통령보다 더…' 그러는데, 그럴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데는 날아가듯이 갈 수 있어요? 아니예요. 지상에 기반을…. 맨 처음에는 벽돌 하나 가지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콘크리트로 기초를 쌓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하늘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민족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의 우월성이 어디 있느냐? 이건 오랜 역사의 출발과 더불어 기반을 쌓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 일대에서 얻어진 이름이로되 그 일대에서 얻어진 명사는 가정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민족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그다음엔 국가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세계적인 이스라엘로서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명사를 가졌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망해 버렸습니다.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다 망했습니다. 예수를 잡아죽임으로 말미암아 다 망해 버렸단 말입니다. 유대 백성을 보게 될 때, 본래의 민족과 국가를 세우려 하던 세계사적인 이스라엘, 세계 국가적인 이스라엘, 국가 주권을 중심삼은 승리적 이스라엘을 건국하려 한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스라엘 역사, 가정적인 이스라엘 역사는 닦았지만 국가적, 세계적 이스라엘 기반을 닦아야 할 주권적인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깨깨 못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그 나라를 치는 사람은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가 왔다 간 후의 2천 년간은 왜 지지리 못난 입장에서 나그네가 되어 가지고 가는 곳곳마다 학대를 받고 가는 곳곳마다 몰리게 되었느냐? 그것은 예수를 죽인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어떻고 어떻고…. 그렇게 간단히 안 돼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사적인 환난을 극복하라 이겁니다. 이 환난이 십년 가면 십년 이상 품을 수 있는 그 자체가 되어야 되고, 백년 가면 백년 이상 참아낼 수 있는 내 자체와 내 가정과 내 주의, 혹은 교파, 새로운 이스라엘 이념을 가진 주권국가를 만들어 놓아야 영원히 남아지는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제아무리 개인적으로 승리하고, 가정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서 세계사적인 이스라엘 권한을 갖고 나온다고 말하지 말라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