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의 출발은 최악의 자리에서부터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7권 PDF전문보기

도(道)의 출발은 최악의 자리에서부터

그런데 길을 닦는 데 있어서는 맨 처음에 산 고개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평지에서부터 길을 닦아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평지에서부터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의 절정이 어디냐? 타락했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어느누구도 갈 수 없는 최악의 자리에서부터 길을 닦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은 타락한 인간이 다시 하나님 앞으로 찾아갈까봐 천신만고하면서 갈 길을 막고 가지 못하게끔 어디로 데려갔느냐 하면 악산 최고봉에 갖다 놓았다 이거예요. 방향도 모르고, 동서남북도 모르는 겁니다. 거기서는 나침반이 없어서 자기 방향을 알 수 없는 겁니다. 이런 자리에 갖다 처박아 놨다구요. 이러한 존재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길을 닦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러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 만민이 그런 환경에서 인생이 가야 할 공동적인 노정을 개척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왔다는 겁니다. 이 길을 닦는 데 있어서 남과 같이 쉬는 자리에서 닦을 수 있느냐? 아닙니다. 남이 생각지 않는 자리에서 길을 닦아야 되고, 남이 노력하지 않는 자리에서 노력해야 되고, 남이 생각지 않는 이런 환경에서 싸움을 해 나오면서 이 길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은 저버리고 가더라도 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숭상하고 선을 숭상하고 종교의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최악의 자리에서부터 이 길을 닦아 나와야 할 텐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닦을 줄 모르고 전부 다 방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어디를 찾아가느냐 하면, 최악의 자리, 제일 외로운 자리, 제일 고독한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출발은 어디서부터냐? 기도에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기도하는 장소는 대개 어디냐 하면 산입니다. 산중에서도 고독한 산, 지극히 외로운 산, 이런 자리에서부터 닦아 나오는 거예요.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이 수고하고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린 공적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향할 수 있는 길이, 꼬불꼬불하나마 연락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길을 통해서 세계의 문화권은 종교라는 사상이 뒷받침하는 기반 밑에서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 성장해 나왔다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점점점점 흘러 내려가요. 많은 길들이, 꼬불랑 꼬불랑한 길들이 합해 가지고 세계로 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나가자 이거예요. 이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라는 거예요.

강원도인가 충청도인가? 충청북도구만. 거기에는 금강도 있고 한강도 있다고 하는데, 그 충청북도에 금강이 있고 한강이 있을 게 뭐예요? 거기에 근원이 있다 이겁니다, 근원. 한강이 어디 있느냐 할 때, 물론 서울에 한강이 있지만 찾아 들어가게 되면 강원도 산골짝, 태백산 그 계곡까지 찾아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강의 줄기가 맨 처음 시작하게 될 때에는 골짝 골짝마다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물이 흐르게 될 때에, 한강 가는데 날아갈 수 있어요?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산에서부터 밑으로 떨어져 가지고 제일 깊은 곳, 제일 깊은 골짜기를 찾아 내려가 가지고 강에 합해 가지고, 점점점 그 거리가 길어짐에 따라 물줄기가 굵어져 가지고 이것이 평지를 거쳐 나오게 될 때, 크나큰 강을 이루어 한강이라는 명사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역사 노정에 있어서 도의 길을 개척하는 노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지류들이 합하여 본류를 이루어 가지고 하나의 강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의 내용의 길을 가는 것이 도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평탄한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지에서 흐르는 물과 같이 유유히 흐를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한강에 흐르는 물줄기이기 때문에 가다가 벼랑에도 부딪치고, 바위도 넘어야 되고, 혹은 폭포로도 떨어져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와 환경에 따라 변화가 심할 것이며, 변화만 심할 것이 아니라 자기 신체가 부딪쳐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 입장도 많이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해를 향하는 그 물줄기를 이룰 수 없는 강과 마찬가지로 대도를 개척해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도의 길은 무엇으로서 출발하는 것이냐? 슬픔과 고통과 고독과 절망 가운데서 출발한다 이겁니다. 슬픔과 고통과 고독과 절망, 이것은 본성을 가진 인간이면, 선의 목적을 지향하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면 어느누구나 오른손은 물론이고 왼손을 저으면서도 싫다고 할 수 있는 여건들입니다.

이런 여건들 가운데서 고통이 심하더라도 그 고통을 극복해야 되고, 절망이 심하더라도 극복해야 되고, 고생이 심하더라도 극복해야 됩니다. 극복하지 않고는 이 길을 개척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극복하지 못하면 내가 쓰러지기 때문에 막혀 버린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이 도의 길을 따라가야 했고, 지금까지 길을 찾은 사람보다 더 정성들인 사람이 있어야 한 단계 넘어설 수 있어요. 그러나 여기서 또 막힌다는 겁니다. 이러면서 여기에서 더 정성들인 사람이 있어야 또 뚫고 나가는 거예요. 정성을 더하고 정성을 더하고 더해서, 이렇게 해서 세계적인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런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 선조들이 충성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지금까지 이 길을 개척해 나왔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