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하나님을 기쁨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7권 PDF전문보기

슬픔의 하나님을 기쁨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그러면 이 고개를 넘어야 되는데 이 고개가 얼마나 험할 것이냐? 민주세계에 제아무리 훌륭한 위정자가 있어 가지고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운동은 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건 흘러갈 수 있는 하나의 역사과정에 필요한 것이지, 역사의 모든 방향에 채워 가지고 자기의 목적으로 이걸 정리하여 새로운 방향으로서의 승리의 팻말을 거기에 붙여 가지고 출발한다는 명사를 붙일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에 대응될 수 있는 하나의 실제의 기본 논리는 될는지 모르지만, 이 천륜의 법도를 개척해 나오는 그 노정에 있어서는 하나의 공적의 실적으로 남길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날 현세의 민주세계에서 승리만 하면 되느냐? 현세를 승리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인연이 엉클어진 그 사실을 타파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엉클어진 역사적인 인연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승자의 권한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그 승자의 권한이 무엇이냐? 가인 아벨로 보면 아벨이 승리할 수 있는 승자의 권한을 가져야 되고, 노아를 중심삼고 보면 노아가 실패했던 전부를 복귀한 승자의 권한을 갖춰야 되고,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 이르기까지의 역대의 우리의 조상들이 수고하다가 실패했던 모든 서러움의 오점을 집어치우고 기쁨과 영광의 승리의 권한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이시여, 이와 같은 한 날을 보기 위한 것이 당신의 소원이 아니었습니까' 할 수 있는 권위를 갖추어 나타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기반을 갖추지 않고는 이런 길을 출발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하나님을 모셔 와야 됩니다. 모셔 온 다음에는 역사적인 사정을 통과하고, 그 사정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기준에 서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적인 하나님은 슬픔 가운데 잠겨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기쁨의 하나님으로 모셔 오지 않고는 이 고개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고개를 넘어갈 때 낙망과 절망 가운데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소망에 벅차 가지고 늠름하고 희망에 부푼 가슴으로 단숨에 넘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낙오되고 쓰러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왕에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한 6천 년 역사의 탕감노정이니만큼 이 민주세계의 고개를 넘는 데는 단숨에 넘어가기를 하늘은 바라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이 민주세계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탕감된다고 했으니, 종적인 역사가 소생·장성·완성의 역사로 벌어져 나왔기 때문에 횡적인 역사의 고개도 소생·장성·완성으로 전개된다 이겁니다. 이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도 역시 소생역사·장성역사·완성역사를 거쳐 나오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