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 산다는 건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것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3권 PDF전문보기

위해 산다는 건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것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두리뭉수리 하고 요술통이라 이거예요. 짜다면 더 짠것이 없는데 맛있다구요. 시다면 더 신 것이 없고, 달콤하다면 더 단 것이 없는데 맛있어요. 이거 뭐 오미자, 오미자맛이 무슨 맛인지 나 잘 모르겠지만 시금털털하고 뭐 그런 맛이겠지요.

그를 위해 산다고 할 때, 그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있는 하나님의 본연의 이상적인 중심으로 있던 참된 사랑의 그 누룩바탕을 중심삼고 사는 겁니다. 그런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살아 주는 거예요. 그거 얼마나 멋져요. 하나님과 살고픈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 대신 아내와 더불어 살아 주는 거예요. 또, 남편과 더불어 살아 주는 것입니다. 남편 여편네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남자 여자 사랑만 가지고는 안 돼요. 이건 횡적 사랑밖에 안 돼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모가 돼 봐야 됩니다. 부모가 되어 보지 않고는 종적 사랑을 몰라요.

횡적 사랑을 알고 난 후에 아들딸을 왜 필요로 하느냐? 종적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들딸을 못 낳은 사람들은 종적 사랑을 몰라요. 그런 사람은 이상적 인간상에서는 낙제생에 해당하기 때문에 결혼한 부부에게 애기가 없으면 불행하다고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왜 불행하냐? 부모의 자리에, 윗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아래와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상하가 연결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 사랑하듯이 아내 사랑하듯이, 위하는 사랑의 세계에서는 그 이상 사랑을 해도 불평이 없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이상 아들딸을 사랑하더라도 위하는 세계 판도권 내에서는 그 여편네가 가라사대 `저놈의 영감은 그저 아들딸만 사랑하고 나를 밤낮으로 돌볼 줄은 모른다. 왜 저래' 이렇게 불평을 못 합니다. 불평을 안 하는 거예요. 그걸 더 좋아하고, 더 좋아서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렇지 그렇지. 좋다 좋다' 이런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그다음에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 사랑의 내적 인연을 가지고 중앙핵의 자리에 영원히 머물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구형에 있어서 모든 힘은 핵의 자리를 통해서 전부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통하려고 한다구요. 그렇잖아요?

천만 가지 줄이 있더라도 이 한 점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것이 중앙입니다. 중심존재는 모든 힘을 책임지고 있는 거예요. 그다음 모든 환경을 보호해 주는 거예요. 보호하는 데는 깊고 낮고 다 같은 거리에서 보호해 주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주고받음으로 말미암아 좋은 면의 영원한 궤도를 따라서, 우주의 법도를 따라서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리드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위하는 사랑의 세계에서는 어머니 아버지를 보다 사랑하는 남편에 대해서 그 여편네가 `당신은 어머니 아버지밖에 몰라' 하면 거 무슨 여편네라고 그러나? 불효 여편네라고 그러지 뭐라고 그래요? 남편에게 그러면 말이예요. 악처라고 그래요. 요사스러운 악처. 남편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데 자기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은 중앙과의 관계를 못 맺는 사람이예요. 알겠어요? `아이고, 저놈의 남편은 자기 어머니 아버지밖에 몰라' 하는 것은 벌써 탈출이 벌어지는 거예요. 평등권내를 무시하는 거라구요.

진짜 남편을 위하는 아내라면 어머니 아버지를 그렇게 위하는 남편 뒤에 가서 `어서 받듭시다. 어머니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냅시다' 해야 되는 거예요. 거 얼마나 멋지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그렇게 위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 황공해 가지고 `아이구! 제발 그러지마! 아무렇게 해도 좋아. 아무렇게 해도 좋아' 하고 도망간다는 거예요. 도망가니까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가 거기에 생겨나느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