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가 불분명하면 결과도 불분명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96권 PDF전문보기

동기가 불분명하면 결과도 불분명해

자, 오늘 제목에 나오는 창조이상…! 창조이상이 도대체 뭐냐? 창조이상 가운데는 창조한 주체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창조한 주체를 중심삼고, 그 생각하는 모든 내용을 중심삼고 인간이라든가 역사라든가 우주가 다 들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창조이상을 누가 알았느냐? 여러분들 지금 뭐 예수 믿고 천당 가겠다는 그런 허깨비들…. 그건 허깨비 장난이예요. 뭐 예수 믿으면 천당 가? 무지한 자리에서는 완성의 길이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발전된 과학에 의한 공식적인 이런 법칙을 활용한 컴퓨터에 의해서도 그것이 안 맞을 때가 많다 이거예요. 완전히 과학적인 데이터에 의한 공식기반 위에서도 그것이 가능치 않은 일이 얼마든지 생겨나는데 주먹구구식으로 해 가지고 이 모든 우주의 어려움을 넘어서 해방자의 왕권을 가지고 천국 갈 수 있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구요. 그거 심각하다구요.

이렇게 볼 때에, 나를 책임질 사람이 누구냐? 이게 문제 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책임질 수 있느냐? 이렇게 물어 보게 될 때 책임질 수 있다 하는 사람 있을 것 같아요? 여기 남자 여자, 나라고 하면 남자 여자로 나눠지는 거예요. 여자인 나를 내 자신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이런 나를 어떤 남자한테 책임져 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모순된 논리는 없어요. 안 그래요? 자신을 책임질 수 없는 존재가 어떤 남자에게 자기를 자신 있게 책임져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그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거예요.

그 남자 여자, 스스로가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부부가 되어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의 입장에 섰으면 어머니 아버지로서 아들딸을 낳고 사는 그 가정에 있어서 자녀들의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느냐 이거예요. 부모도 책임질 수 없다 이거예요. 그건 확실한 결론이예요. 그러한 가정들이 연결돼 가지고 종족이 생기고 한 동네가 생겨났다면 그 동네동네를 누가 책임지느냐 이거예요. 동네가 책임질 수 있느냐? 동네 자체가 가정들을 책임질 수 없고 개인도 책임질 수 없는 거예요. 동네가 책임질 수 없으면 그 면이 책임질 수도 없고, 그 나라가 책임질 수도 없고, 그 세계가 책임질 수도 없고, 그 우주가, 그 역사가 책임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와요.

이러한 실상을 무대로 하고 내가 책임 있는 나로서 살아간다 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거예요. 이거 왜 이렇게 문제가 됐느냐? 문제는 근원을 확정짓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근원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예요. 동기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과정도 불분명하고 결과도 불분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질문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왜 필요해요? 거기에 왜 기독교가 나와야 되고, 메시아가 왜 필요해요? 이런 등등의 문제가 덮어놓고 믿어 가지고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역사성을 중심삼고 전후를 가리고 역사의 기원과 역사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일치될 수 있는 논리적 체제 위에 현실의 자아를 확정시켜 놓고, 자아의 인식에 따라 미래의 갈 길을 뚜렷이 아는, 스스로의 책임을 다짐할 수 있는 책임자라고, 중심자라고 자인할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관계를 맺게 될 때에 신임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희망적일 수 있고 평화적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허사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