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적인 사랑의 기반 위에서 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08권 PDF전문보기

횡적인 사랑의 기반 위에서 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자, 이젠 다 끝나 가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진짜 완성하려고 하는 아담이냐, 내가 진짜 완성하려고 하는 해와냐? 완성한 아담이냐, 완성한 해와냐? 이런 것을 묻게 될 때 여러분 답이 어때요? 완성한 아담 해와는 완성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당당한 대상의 배필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절기를 초월하고 세기를 초월해 가지고 영원히 사랑하기에 당당하고, 사랑받기에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할 때 `노(No)'라는 말을 하나님이 못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여자인 해와가 말하기를 `하나님 나는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할 때 하나님이 어떻겠어요? `그래야지' 그러겠어요, `아니야. 아담을 나보다 더 사랑해라' 그러겠어요? 어디, 해와 후손들 답변해 봐요. 「그래야지 합니다」 그래요.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하면 `그래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이 `너희 남편은 어떻게 할래?' 할 때 `남편은 당신보다 더 사랑합니다!' 하면 어떻게 될까요? 낙방이겠어요, 합격이겠어요? 「합격입니다」 나도 모르겠는데? (웃음) 시험칠 때 어떻게 답변할 거예요? 저나라에 가면 그런 모든 것을 다 답변하고 나서야 자유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다 경험한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여러분들은 청맹과니가 되어서 영계가 어떤지 모르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거 다 훤하게 아니까 통일교회 교주도 해먹잖아요? 그렇지요? 그만큼 당당한 무엇이 있다구요.

하나님에게 `당신보다 우리 남편 아담을 더 사랑합니다' 할 때 어떻겠어요? `요 녀석 그거 맞지 않다' 하겠어요, `맞다' 하겠어요? 「맞다 합니다」 어째서? 「좋아해요」 이 쌍거야, 어째서 하고 물으면 답변해야지. 왜 그러냐 하면…. 「둘이 사랑하라고 창조했으니 하나님이 그걸 좋아하시니까…」 아담 해와는 횡적이예요. 횡적 기준의 사랑의 움이 터야 종적인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아담 해와가 사춘기가 되면 이래요. 옛날에는 아담 녀석이 밉더니 지금은 이상하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따라다녀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디 가서 과일을 따먹어도 키가 큰 아담이 먼저 따먹고, 길을 가도, 산에 올라가도 일등이고, 바다에 들어가도 아담이 일등이니 따라 다니기만 하는 해와는 기분이 나빴다는 거예요. 언제나 내가 한번 앞설까 했다는 것입니다. 해와가 아담을 따라다녔지 앞서서 다녔겠어요? 옛날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랬는데, 철이 들어 가지고 사춘기가 되니까 아담 뒤에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담을 붙들고 싶고 만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궁둥이도 만지고 싶고 업혀 다니고 싶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변화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아담은, 옛날에 `오빠 같이 가!' 하면서 뛰어가는 오빠를 스톱시켜 가지고 `왜 나 혼자 두고 가?' 하며 앵앵거리던 해와를 이제는 왜 그런지 데리고 가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상징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저 옆에 와도 싫더니 이제는 마주보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코도 만져 보고 싶고, 귀도 만져 보고 싶고, 입술도 만져 보고 싶고, 먹어 보고 싶어진다는 거예요. 왜 히히 해? (웃음) 그거 다 거짓 말이 아니잖아요?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예요? 다 그런 거지요.

그러니까 세상을 다 알 때까지는 박물관으로부터 세상을 다 돌아다니면서 남자 여자에게 제일 좋은 것을 찾는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여자로서 남자로서 찾다 보니 맨 나중에는 남자에게 제일 좋은 것은 여자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여자에게 제일 좋은 것은 남자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 같이 태어나서 여기서 똑같이 출발해 가지고 하나는 동으로, 하나는 서로 끝까지 가다 보니 세상을 다 알았다 이겁니다. 어떻게 해서 아버지도 알고 어머니도 알고 다 알았다는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 둘이 같이 살지요? 무엇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또 어머니 아버지 같이 살지요? 무엇 중심삼고? 「사랑 중심삼고」 또 자기 부부도 같이 살지요? 무엇 중심삼고? 「사랑」 아들딸은 무엇 중심삼고? 「사랑」 입장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말 가운데 전부 다 포괄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가 없게 되면 고아라고 합니다.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아는 사랑을 중심삼고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과부도 불행하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사랑을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천지 대도의 중심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근원에 있어서 뿌리될 수 있는 사랑이 순으로 돌고 천만 가지로 다 돌더라도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리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 하나님에게서 나왔지요? 「예」 무슨 사랑에서 나왔는지 알아요? 참사랑에서 나왔으니 돌아갈 때 거짓 사랑 가지고 돌아가겠어요, 참사랑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돌아가겠어요? 「참사랑 이상의 사랑을 갖고 돌아갑니다」 참사랑 이상의 사랑을 가지게 될 때는 하나님이 끌려오는 것입니다. 주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백을 주고 잊어버릴 수 있는 하나님 앞에 나는 천을 주고도 잊어버릴 수 있는 놀음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나의 상대가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 알아요? 「예」 야! 이거 멋지지요. 주체와 대상 관계가 엇바꾸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한번 하나님 이상 해보고 살겠다 한 사람이 지옥 가겠어요, 천국 가겠어요? 「천국 갑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이 살고 있는 아침 식탁의 심부름꾼이 되겠어요, 같이 앉아서 사랑의 밥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살 수 있는 자리에 가서 머물겠어요? 어떤 거예요?

당신들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먹고 살고 싶잖아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으면 아침·점심·저녁 같이 먹고, 자는 자리까지도 그 아들딸을 품고 같이 자고 그렇게 같이 살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의 도리는 천하를 넘어서 마찬가지의 작용을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