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다 프로젝트 기공식이 중국에 끼친 공(功)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10권 PDF전문보기

팬다 프로젝트 기공식이 중국에 끼친 공(功)

이번의 예를 들면 말이예요, 북한이 소련이 저렇게 됐기 때문에 중국 외무성은 죽더라도 자기 판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얼씬도 못 하게 하려고 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의 박철언이라든가 김종휘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북경에 가 가지고 오학겸을 만나려고 한 거예요. 오학겸은 중국 부총리로서 외교에 대한 전체 책임을 졌었기 때문에 외교에 대해서는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완전히 김일성이의 앞잡이가 되어 있었어요. 내가 이것을 뚫으려고 얼마나 천신만고했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연형묵 북한 총리가 북경에 무엇 때문에 간 줄 알아요? 도깨비 같은 레버런 문이 중국 외교부를 전부 다 돌려 놓았다 이거예요. 보라구요. 그 차관(부부장)과 우리 사람이 얘기를 하는데, 아시아 국장과 구라파 국장이 얘기한 내용은 국가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국의 생사지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우리하고 의논한 거예요. 그 내용까지는 얘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갔어요.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얘기해 가지고, 그 수뇌부들은 벌써 레버런 문이 그러한 방향으로 일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내 신세 진 것을 북경 정부가 모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안문 사건이 1990년 6월 4일에 벌어졌는데 선생님은 팬다 프로젝트를 중심삼고 27일날 기공식을 한 것입니다. 그때는 도망갔던 자유세계의 모든 외교관들이 다시 중국에 오려고 보따리도 안 쌌을 때입니다.

그래 역사에 없는, 어떤 국가도 못 하는 회사를 만들어 가지고 중국에 들어와서 기공식을 하니 얼마나 기가 차겠어요? 그때 중국 정부하고 내가 계약하기를 9월 23일까지 2억 5천만 불을 중국 은행에 예금하기로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몇 달 전이예요? 9월 23일이니까 3개월 전이지요? 3개월에서 나흘이 모자라는구만. 거기를 들어가 가지고 모험을 하면서 기공식을 한 것입니다. 그 기공식 자리에 내가 간다니까 중국 정부에서는 그저 꿈같이 생각했습니다.

내 말 들어라 이거예요. 이럼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중국으로부터 돌아선 서구사회의 사람들을 돌이키려면 5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가야 됩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중국에 손을 대는 한 책임지는 입장에서, 내가 몰리는 입장에서…. 지금 미국 정부에서 야단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을 규탄해 가지고 전부 잘라 버리려고 하는데 레버런 문은 이런 놀음을 하면서 중국을 최혜국(最惠國)으로서 선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세상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제일 원수로 생각했던 레버런 문이 자기 나라에서 천안문 사건이 나니까 전부 도망가는 자유세계의 경제인단을 뒤로 돌아서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미얀마라든가 태국으로 도망 나가 있던 외국 경제인들이 지금 다 들어왔습니다. 자기들이 아는 것입니다. 문총재가 끼친 그 공이 자기 국가의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