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본질과 기능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11권 PDF전문보기

양심의 본질과 기능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말하게 될 때 `너 진짜 양심적이야?' 하고 물어 보지요? 양심적이냐, 비양심적이냐 할 때 양심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 원칙적 기준을 따라갑니다. 그건 무엇이냐 하면, 선한 기준을 연결시켜 갈 수 있는 하나의 주체와 같은 것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을 중심삼고 교육한다는 학교가 있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내 양심한테 `양심아, 너 학교 가서 공부해라!' 그런 말 들어 봤어요? 양심은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갈 길을 알아요. 양심의 자리는 변치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양심이 어떻게 있을 것이냐? 횡적으로 있을 것이냐, 45도로 있을 것이냐, 90도로 있을 것이냐? 이런 것이 문제됩니다. 양심이 왜 변치 않느냐? 양심이 곧다고 하지요? 안 그래요? 양심이 삐뚤어졌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이라 할 때는 곧은 것을 말해요.

그러면 양심이 처하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양심은 수직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양심은 수직의 자리에 서 있는데 수직이란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도 이렇게 서 가지고 보게 되면, 천하의 모든 것이 그 각도에 맞춰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똑바로 서 있다는 것이 뭐 중심삼고 똑바로 서 있겠느냐? 사람의 골격이 그렇게 생기고 인체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서? 물론 그렇겠지만, 똑바로 서 있는데 안정할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양심이 똑바로 서 있는데 중앙에 수직으로 서 있어야 돼요. 이 양심이 비뚤어지면 몸과의 작용에 있어서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똑바로 서 있는 인간 앞에―여기를 숨구멍이라 하잖아요?―이것 중심삼고 똑바로 양심이 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수직에 대해서 교육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 건축할 때 다 재는 데는 수직, 똑바로 된 것 중심삼고 모든 것을 맞춥니다. `수직아, 네가 여기에 맞춰라!' 하는 법이 없어요. 수직을 따라서 맞춰라 이거예요. 그런 것이 문제가 돼요.

양심은 수직으로 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직에 대해서 `야, 수직아! 네가 각도를 달리 해라!' 할 수 없어요. 그 수직이 착지하는 곳은 반드시 절대 하나입니다. 아시겠어요?

수직이란 것이 머무는 곳은 한 점밖에 없어요. 영원히 한 점이에요. 영원히 변치 않아요. 이렇게 봐야 돼요. 그러니까 양심은 수직에 서 있어야 돼요. 그 수직에 서 있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수직에 서 있느냐 하고 볼 때에 인간의 삶에 있어서 원칙적인 문제, 근본문제에 있어서 수직에 서 있어야 된다, 근본문제가 수직이 안돼 가지고 찌그러지게 되면 문제가 크게 벌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