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이 통과하는 길은 곧 직단거리이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27권 PDF전문보기

참사랑이 통과하는 길은 곧 직단거리이다

두익사상의 개요(槪要)가 뭔지 잘 알겠지요? 덧붙여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해 줄게요.

인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이렇게 3시대가 있습니다. 여기서 구약시대는 어떤 시대예요? 제물을 희생삼아 자녀를 구제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올 준비를 하는 거예요. 신약시대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 부모를 맞이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시대를 맞이하여 신랑 신부를 세워 부모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 왔습니다. 성약시대에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참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지금까지 40여 년 간 고생해 온 것은 하나님을 지상에 맞이하기 위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신인일체(神人一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이고, 선생님은 횡적인 참부모가 되는 거예요. 사랑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방향을 결정하고 통과하게 되는데, 그것은 직단거리를 통과합니다. 가장 짧은 길을 간다구요. 여기서 종횡이 합체가 되는 점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사랑하는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에게 있어서, 부부 사이에 방해되는 것이 있더라도 직행하는 것입니다. 하오리(はおり;겉옷의 한 종류)가 찢어질 정도로 직행해서 직단거리를 통과하는 거예요.

그렇게 볼 때에 천상 지상을 맺는 천적인 사랑, 참사랑이 통과하는 길은 곧 직단거리이기 때문에, 수직선의 한 점밖에 없습니다. 91도도 길고 89도도 길어요. 직단거리는 90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 직단거리를 만든 분이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이 수직 되는 부모로서 서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이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참부모가 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된 남편과 참된 아내의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횡적인 측면에서 보면, 91도도 길고 89도도 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단 한 점, 90도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가 참사랑을 중심한 공식적 합병점(合倂點)이요, 이상의 핵심이요, 이상(理想)의 중심인 것입니다. 왜 거기가 이상의 중심이냐? 거기에 전후를 더하게 되면 구형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동쪽을 대표하고, 여자는 서쪽을 대표합니다. 서양문명은 여자의 문명이기 때문에 물질적 문명이예요. 물질을 중심으로 하는 문명은 분석적 문명입니다. 반면에 동양문명은 종합적 문명이예요. 그렇게 전후 관계를 짜게 되면 구형(球形)이 되는 거예요.

이 중심에서 구체(球體)의 표면을 연결하는 상대 관계에 있어서, 거리로 볼 때는 전부 다 같아요. 90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동서남북·전후좌우 어디에서 맞추더라도 딱 맞는다구요. 거기에는 손실이 없어요. 어떤 길을 통과하더라도 손실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에서도 남편과 아내가 완전히 한 점을 중심삼고 참사랑으로 직단거리를 통해 90도로 교차하는 점에서 일체화되지 않고는 참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어긋나고 있다구요. 몇 도씩 다 어긋나서 타원형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완전한 구형이 왜 이상적이냐? 완전한 구형이 되면 그 구체(球體)의 표면으로부터 중심에 이르는 길은 수직이 됩니다. 어디로도 수직이예요. 공으로 보면 굴리다가 멈출 때, 어디에서 멈춰도 수직이 되지요? 어떤 표면에서도 수직으로 중심과 연결되기 때문에 표면은 평등권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같은 가치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과연 그런 입장에 서 있느냐? 여러분들이 가진 사상을 중심삼고 이 전체가 구체의 수직권에 서 있는 것과 같은 표면의 면적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태까지의 여러 가지 관념이라는 것들은 다 엉터리라구요.

일심불란(一心不亂)이 되어 그 중심 되는 참사랑에 의한 중핵점(中核點)을 중심삼고 전부 구체의 평등권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게 서게 되면 전부가 나에게로 연결되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체가 움직이게 되고, 내가 후퇴하면 전체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그 구체는 나의 자유자재권 내에 들어가는 거예요. 전부가 공명권(共鳴圈)에 들어간다구요. 그러면 영계도, 동양도, 서양도 앉아서 다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공명권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그 경지에 한순간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공명권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가시는 거예요.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면, 내 안에서 `그래 그래. 여기 있다.' 한다구요. `어디요?' 하면 `여기 여기.' 하는데, 그거 설명할 수 있어요? 그게 어째서 그런지 설명할 수 있어요? 그 경지에 들어가면 신인일체(神人一體), 즉 사랑의 핵심을 중심삼고 일체화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공명권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차(音叉;소리굽쇠)는 주파수가 같으면 소리가 울리지요? 그와 같이 지상의 육신을 쳐도, 영계의 마음을 쳐도 전부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통인들이 예언하는 것도 그 경지에 들어가서 그 내용을 전해 줌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생애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해야지, 모르고 가도 괜찮은 인생 노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