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해 인간과의 결합점을 추구해 온 하나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27권 PDF전문보기

역사를 통해 인간과의 결합점을 추구해 온 하나님

현대 신학, 기독교 신학에서의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은 성스러운 분이고, 피조물은 뭔가 죄를 지은 자, 그러니까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렵다구요. 그런데 통일교에서는 그것이 하나가 돼요.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기점으로 정착하는 것입니다. 출발부터 가정(家庭)을 통과해 가지고 종점에서 정착하는 거예요. 그렇게 정착한 것이 결국 원래대로 돌아간 그 출발점과 같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같은 입장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확장·번식·확대되어 인류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론적이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관념적이지 않습니다. 몸으로 체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인들은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확실히 있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보면 여러분들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무런 공로도 없이 원리를 들었어요.

우연히 지나다가 길가에서 통일교인을 만나 원리를 들어 보고 감동을 받는다든지 그랬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수행을 해서 이 길로 왔더라면, 수천 년의 고생 끝에, 그러한 고생을 통해 자신이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그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혹은 자기 친구가 통일교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했을 거예요. 뭐가 변한 것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연결되었다 이거예요. 그런 동기로 원리를 접하고 감동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그 감동은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이라는 거예요. 산을 넘어서 맞은편 평지로 넘어가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평, 평면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가치의 내용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서 얼마나 인간과의 결합점을 추구해 왔는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동서(東西)의 역사가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역사, 국가의 역사는 물론, 모든 역사가 평탄한 관계로 이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격동하는 여러 탕감 현상을 통해 이어져 있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피를 흘리고, 혹은 멸망하고, 죽음을 무릅쓰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역사가 발전해 나온 거라구요. 그런 것은 보통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니까 적당하게 이 길을 가다가는 도중에서 다시 세상 길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반드시 가야만 되는 길입니다. 간단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문제예요. 근본이 없다구요. 자신만의 근본이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들도 똑같아요. 선생님은 평생 동안 이런 고생을 하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도중에 방향을 바꾼다든지, 그만두려고 한다든지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과거에 이 길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어요. 그런 기준에는 어느 누구도 미치지 못해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니까 당연한 것처럼 당당하게 빠져나간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