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의 기원지는 생명을 부정하고 잊어버리는 자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29권 PDF전문보기

참사랑의 기원지는 생명을 부정하고 잊어버리는 자리

여기서 탕감길에 대한 것을 알아야 돼요. 탕감길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나님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를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그리우니 사랑의 표시의 물건들을 전시한 박물관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표상으로 남성 여성은 당신의 보이지 않는 성상을 실체 동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생기를 불어 넣었다고 했지요?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그랬다구요.

그래서 뭘 하자는 거냐?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투입하기를 얼마만큼 투입했느냐? 자기 사랑의 상대인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 거와 마찬가지로, 아까 선생님이 그걸 중심삼고 기뻐했다는 얘기도 했지만, 백만한 하나님이 백만큼 투입하면 백만한 상대밖에 안 돼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데는 무한히 투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부 자기 아들딸이 훌륭하길 바란다구요. 사실 그렇다구요.

송영석이, 지금 데리고 사는 부인 만족해? 「예.」 그래, 그 여편네에 대해서 생명 몇 개나 투입하고 잊어버릴 것 같아? 「지금 다 투입했습니다.」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았다 해도 감사하겠느냐 말이야. 「백 번, 천 번 감사합니다.」 정말로? (웃음) 나보다 낫게, 그럼? (웃음)

하나님이 백만한 하나님이라면 백만한 것을 주면 백만한 상대밖에 안 나옵니다. 그러니 천만 배의 가치를 가지려니 매일같이 투입해서 천만 번을 계속하더라도 잊어버려야 돼요. 기억해 가지고는 투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지되는 거예요. 그러나 잊어버리면 없기 때문에 자꾸 투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살아 있는 생명줄도 백 배를 투입하고 남을 수 있는 참사랑의 이상적인 상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할 때에, 자기 생명의 몇백 배를 투입하겠다는 그런 참사랑의 발원지, 출발의 기점은 생명을 부정하고 잊어버린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느니라! 「아멘!」

참된 남편은 아내를 위해 죽으면서도 천년 만년 다시 돌아와서 그를 구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죽을 수 있는 남편입니다. 참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그럴 수 있어야 돼요. 참된 친구도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넘어서 자기 친구를 사랑하겠다는 사람이에요. 그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참된 생명이 출발할 수 있는 기원지는 생명을 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생명력, 타락한 사랑선 이상이 돼야 된다는 말이에요. 타락한 생명을 부정한 이상의 자리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을 중심삼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한 거예요. 이건 뭐냐 하면 타락한 사랑권을 넘어서 참사랑권을 바라거든 죽는 자리에서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 도달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하는 논리입니다. 알싸, 모를싸? 「알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말이에요, 하나님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마음대로 못 해요. 마음대로 한다면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이 죽일 수 있어요? 답변해 봐요. 기독교 논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마음대로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세력을 중심삼고 기독교인들이 전부 피를 흘려 왔습니다. 피흘리는 종교는 망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죽일 수 있어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으면 죽었지, 아들딸을 죽일 수 없는 거라구요.

아들딸의 생명을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에 참사랑이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수습을 해야 된다구요. 통일교가 위대한 게 그것입니다. 하나님도 상대적 이상을 즐길 수 있는 사랑을 바란 것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도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꺼번에 생겨 났겠어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는 영계라든가, 천상세계 전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