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중심이 무엇이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40권 PDF전문보기

가치관의 중심이 무엇이냐

그러면 이제 우리 인간에게 가치관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냐 이거예요. 우리 인간에게는 인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知)·정(情)·의(義)를 대표한 인간의 인격이 있는 것입니다. 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치관을 필요로 하는 우리 인간 앞에 신으로서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이런 인격적인 신이 되어서 지·정·의의 가치 내용을 영원한 저변에서 연결시켜 가지고 그 연결된 모든 내용들이 생활관과 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 돼요. 그다음엔 사회관과 국가관과 세계관과 더 나아가서는 통일교회의 술어로 말해서 천주관과 하나님까지 연관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론적인 결과를 피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있는 가치관이 없어질 때까지…. 가치관이 없어진다고 해도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초역사시대를 지내더라도 우리에게 가치관의 설정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절대 필요한 가치관의 중심이 무엇이냐? 그 가치의 중심이 여러분의 선생님들로 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종교를 찾아보면 대체로 어떠냐? 기독교를 보게 될 때, 기원이 불확실합니다. 출발이 불확실해요. 원인이 불확실합니다. 과정적인 노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투쟁적인 역사의 배경도 다 넘겨 왔지만, 끝이 불확실합니다. 시작과 끝이 불확실한 이 와중에 서 있는 기독교는 어디로 갈 것이냐? 가다 보니 틀렸으면 근원을 찾아 가지고 `출발이 이랬기 때문에 틀렸다. ' 할 수 있는, 다시 시정할 수 있는 근원적인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의식구조, 인식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탐구해도 해결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게 신을 인정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철학도 근원이 불확실해요. 근원이 불확실한 가운데 있으니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상세계의 근원도 불확실한 것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이런 와중에 처해져 있는 인간상, 그 인간상 가운데 내 개인, 50억 분의 하나인 나 자신이 있는 거예요. 그런 나 자신을 함부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중요하지요, 여러분? 이렇게 혼란된 삶을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도 언제나 나를 중심삼고 모든 사건이 제기되고, 나를 중심삼고 모든 사건이 해결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안 그래요?

어디에 가든지…. 한국에 산다고 해서 제한된 삼팔선 이내에서의 한국 사람을 중심삼은 영향권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한된 환경에 있지만, 초제한적인 입장에서 자기의 입장을 존중시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 가치관입니다. 이렇게 초가치적인 내용을 추구하면서 내 자신을 중심삼고 안착하려면 보다 큰 초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한때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내 개인에게 안착할 수 있는 역사와 안착생활 무대는 있을 수 없다는 이런 논리적인 결과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청소년 때부터 생명을 걸고 개척해 오다 보니 이렇게 되었지, 통일교회의 교주가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게 어떻다, 저떻다. 아니다. ' 하고 가르쳐 주니 떼거리들이 몰려 가지고 할 수 없이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간판을 붙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통일교회의 간판을 안 붙이려고 했어요. 간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거예요. 인간의 가치가 간판에 좌우돼요? 오늘날 대학을 나오고 학박사의 간판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사기꾼들이 더 많습니다. 안 그래요? 종교를 중심삼고 사기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나는 사(私)된 모든 간판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구요.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이러니까 할 수 없이 체계적인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교육적인 기반, 이것이 필요함으로 말미암아 간판이 필요하게 되어서 붙이고 이러다 보니 통일교회의 교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 통일교회의 교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있어요? 다 와서 문총재한테 참스승이니 뭐니 해 가지고 표창도 주고 명패도 주었지만….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한 감사의 표시예요? 2·3년, 극히 근자에 되어진 일이거든! 그전에 문선생을 몰랐던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면, 표창을 드리고 나서 자랑스러워할 아무것이 없는 거예요. 그것을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 교육자들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웃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언제 나를 좋아하고 그랬어요? 사돈의 7촌 조카가 통일교회에 간다고 해도 `야, 이거 집안 망친다. 교장선생님의 말을 들어라!' 하며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를 했을런지 모르지만,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따라가서 훌륭한 아들딸이 되라고 훈시한 선생님은 많지 않을 거예요? 어때요? 솔직히 얘기를 한번 하고 넘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