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생명과 혈통과 양심은 볼 수 없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84권 PDF전문보기

사랑과 생명과 혈통과 양심은 볼 수 없어

여러분이 보는 눈은 종적인 것, 높은 이상의 것은 보이지 않아요. 하나님이라든가 그렇잖아요? 사랑을 볼 수 있어요? 생명을 볼 수 있어요? 혈통을 볼 수 없습니다. 양심도 볼 수 없다구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 이거예요. 상대가 나타남으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남자도 사랑 갖고 있고, 생명 갖고 있고, 혈통을 갖고 있고, 양심을 갖고 있지만 혼자는 못 느껴요. 혼자는 못 느낍니다. 남자 앞에 여자만 나타나면 사랑과 생명과 혈통과 양심이 한꺼번에 움직여 나온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갖고 있는데 왜 못 느끼느냐? 자기 혼자는 전부 다 밸런스, 균형이 되어,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0.1제곱미터에 1기압의 압력을 받고 있다구요. 그래서 균형 취하지 만약에 기압이 균형 안 되면 완전히 날아가 버립니다. 그런 무서운 힘의 작용을 균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못 느낀다구요. 여기 딱 하게 되면 이거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균형이 되면 여기 있는지 없는지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갖고 있어도 못 느끼고, 생명을 갖고 있어도 못 느끼고, 혈통을 갖고 있어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아기씨를 갖고 있고 남자 여자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발동하게 되어 있어요. 양심이 있는 것도 몰라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 양심의 뿌리요, 혈통의 뿌리요, 생명의 뿌리요, 사랑의 뿌리입니다. 사랑을 못 느끼고, 생명을 못 느끼고, 혈통과 양심을 못 느끼는 그러한 입장에서 뿌리 되는 하나님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혼자 아무리 해도 사랑 없이는 못 찾아요. 내가 사랑의 얘기를 말하면 미치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주체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뭐가 귀하느냐? 사랑이 귀하고, 생명이 귀하고, 역사와 연결되기 위한 혈통이 필요하고, 양심이 귀한 걸 몰라요.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나 몸뚱이는 보여요. 이 오관을 따라가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게 그게 뭐냐 하면 일상생활로 먹고살아야 돼요. 먹는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동물같이 먹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내용은 있되, 하나님의 영성을 가질 수 있는 영장의 본연은 있지마는 이것이 혈통적인 근원의 하나님의 영생, 영생적 사랑, 영생적 생명, 영생적 혈통, 영생적 양심 기준이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지 않고 사탄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전체가 지옥으로 가는 폐품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폐품!

여러분의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 하면 사랑을 먼저 보지 않아요.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히 하나되었더라면 오관은 사랑을 중심삼고 본다는 것입니다. 이런 물건을 보게 되면 자기가 먹는 것이 아니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먹어야 할 것을 내가 받아먹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상대에 속한 전체로 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내적 소성 있는 것을 전부 다 투입하고 잊어버렸다구요. 그러니까 자기를 중심삼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그랬기 때문에 사랑하는 상대가 완전히 완성될 때까지 계속함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전부는 사랑의 상대로부터 연결되어서 내게로 들어오게 되어 있지, 자기 중심삼고 사랑의 관계를 맺게 안 되어 있다구요. 사랑의 상대가 완성되어야만 하나님은 비로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상대를 만들기 위해서 지은 피조세계는 사랑하는 인간, 아들, 만물의 영장 되는 사랑의 파트너 되는 그 상대의 것이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물을 먹는다 하더라도 전부 다 사랑하는 상대에서 받아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해서 주었기 때문에 그것도 저쪽이 나를 위해 주어서 받으니 수수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요? 좋은 것은 나 때문에 있다, 나 때문에 좋은 것이 있다, 아니예요! 나 때문에 좋은 것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상대를 완성시키고 상대의 기쁨을 백 퍼센트 완성시키기 위해 있다고 하나님은 생각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