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랑으로 무소부재하신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하나님

6) 사랑으로 무소부재하신다

① 사랑만이 경계를 넘나든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도 있습니다. 하늘땅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즉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기를 원할진대, 여러분이 바라보는 물건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니 그 물건을 내 것으로, 천지의 모든 존재물을 내 것으로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최고의 도(道)를 통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소유된 사람입니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나 향기를 풍기는 꽃 한 포기를 보고도 마음으로 영원을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간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8-182, 1959.12.13)

그러면 하나님의 편재성(遍在性)을 어떻게 느끼느냐?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껴라. 태풍이 불어오거든 그것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흘리신 땀과 같이 느끼라는 것입니다.

태양를 바라보거든 그 태양이 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요인을 상징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에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데 하나의 교본이요, 교재로 전개시킨 것,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세워 놓은 것이 자연입니다.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인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59-102, 1972.7.9)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니 우리도 무소부재한 것을 닮고 싶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니 우리도 전지전능하고 싶고, 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하시니 우리도 유일무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닮았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나를 하나님 닮게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온 천하를 다스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26-168, 1969.10.25)

사랑을 통해 체휼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 내가 슬픔을 느끼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자기도 모르게 기뻐지는 것입니다. 효자는 천만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그 효자의 곁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재성에 있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지식적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극과 극을 넘어서 편재를 타당하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을 통하는 그 길에 부모의 사랑은 무소부재(無所不在)입니다.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사랑만이 그 아들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능한 권한은 거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9-102, 1972.7.9)

사랑에는 위대한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불변적인 참사랑과 일치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내가 가세할 수 있고, 언제든지 동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눈을 감지 않고도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을 체휼한 자는 길을 가다가도 멈추고 통곡을 하는 그런 체휼적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만일 자식이 외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자다가도 `아! 아무개야!` 하고 소리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201-357, 1990.4.30)

그래 동맥(動脈)이 위대하냐, 정맥(靜脈)이 위대하냐? 어떤 게 위대해요?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대하냐, 사람이 위대하냐? 그것 역시 같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이 동맥적이라면 우리 인간은 정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등할 수 있는 그런 특권을 지닌 인간의 가치가 있습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나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게 무엇을 중심삼고 그러냐? 사랑을 중심삼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109-146, 1980.11.1)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욕심쟁이 중에도 대왕 욕심쟁이입니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입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니 얼마나 욕심쟁이에요? 욕심꾸러기라고 하거나 뭐 욕심쟁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하여튼 욕심이 많으시다는 말입니다. (121-70, 1982.10.24)

하나님은 절대복종할 수 있는 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절대주관하려고 하는 그런 절대, 독재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님이 절대복종할 수 없게 될 때에는 높은 것은 주관할 수 있으되 낮은 것은 주관할 수 없습니다.

무소부재라는 말 자체가 모순된 말이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 닮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아들딸 닮았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절대복종하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없다 할 때는 하나님이 그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192-30, 1989.7.2)

자기가 그린 작품을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취해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그린 화가가 기분 나빠하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와서 안방에 모시고 `왜 그랬소` 하면서, 사연을 얘기하게 할 것이 아니에요? `아이고 좋아. 아이고 그리워, 아이고 같이 있고 싶어.` 한다고 해서 미쳤다고 하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몰라도, 하나님이 만우주에 꽉 차 있는 편재성을 지식적인 주체로 계시기보다는 사랑으로 계시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사랑의 동감권(同感圈)을 각 분야에서 체휼할 수 있느냐`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재인식하고 재발견해 보라는 것입니다. (59-103, 197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