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존 신관들의 문제점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하나님

7) 기존 신관들의 문제점

① 기성신관은 이율배반적이다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있는가`, `하나님이 전지?전능?무소부재하고 지선(至善)?지미(至美)하고, 사랑이며, 심판의 주이며, 인류의 아버지 등으로 표현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만 있어도 좋을 하나님이 왜 우주를 창조하였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창조에는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 `절대선(絶對善)인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왜 약육강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인간이 타락해서 죄의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완전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 등이 그것입니다. (122-302, 1982.11.25)

하나님이 문제가 많습니다.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해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면 구원할 수 없어요? 그거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전지전능하다면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구원할 수 없다면 그런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인간 앞에서 추방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믿긴 뭘 믿어요? (136-128, 1985.12.22)

하나님은 인간을 타락하게 해놓고 왜 슬퍼하는가 하는 근원을 파헤쳐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또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무능한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33-217, 1984.7.19)

지금까지 신학자들이나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반대하는 사탄을 왜 방어하지 못했느냐 하는 문제는 몰랐습니다. 이것이 영계를 통해가지고도 문제입니다. 어느 때든지 하나님편으로 가려면 반드시 사탄이 방해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방면에서, 일방이 아닌 팔방에서 반대하게 되는데, 그걸 왜 하나님이 간섭하지 못하고 제재하지 못하느냐?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수수께끼입니다. 영계를 통해도 그것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133-86, 1984.7.10)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만 년 역사를 통해 인류를 이끌어 나왔는데 어찌하여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종국에 와서는 이와 같이 낙망과 절망의 세계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내용도 되는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이라든가 혹은 평화의 세계, 인간들이 추구해 나가는 유토피아적 내용이 미래에 가능한 것으로 인간들 앞에 맞아질 것이냐? 지금까지 오랜 역사노정을 통해서 생각하는 사람 혹은 무수한 철인들이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미달해서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때, 미래에 우리들에게 그런 희망의 세계를 가져다 준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30-18, 1983.12.11)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사탄을 그렇게 두는 걸까요? 하루 저녁에 모가지를 잘라서 처단해 버리면 될 것인데 왜 그냥 둘까요? 그거 왜 둬요? 그게 종교에 있어서 제일 난문제인데, 그게 간단한 내용이에요? (127-112, 1983.5.5)

지금 수많은 종교인들은 `하나님` 하면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분이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슨 고통이니 슬픔이니 그러한 개념과 상관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다, 이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모든 신자들은 죄악된 세상에서 회개를 해야 되고 신앙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부자의 관계에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이 이렇게 이율상반(二律相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23-154, 1983.1.1)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공의의 심판주로 보좌에 앉아서 만민을 심판하는 심판장이다.`라고 하는데, 여러분, 재판장이 좋아요? 재판장을 10년 했다가는 병이 들어 죽습니다. 죽는다기보다 병이 들어 나가 자빠집니다. 병이 안 들면 그건 가짜들입니다. 남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을 텐데, 자기가 내린 판결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논법이, 해설법이 여러 가지 방향이 있는데, 자기 판결에 의해 그 사람의 생사 문제를 결정짓는 놀음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주의 공법에 비추어 보게 될 때 법이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은 10년 판사 하면 병이 나야 된다 이겁니다. (198-285, 1990.2.5)

자, 그러면 이 천지의 대주재 되는 하나님이 있다면 한번 물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보좌에 앉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심판주로 오셔서 나쁜 놈은 지옥 보내고 좋은 놈은 천국 보내고…. 그거 보고 좋아하는 하나님이라면 미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초월한 절대선의 자리에 계십니다. (194-32, 1989.10.15)

기성교회 목사들은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가지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다고 그러는데, 그거 무슨 재미예요? 보좌에, 왕좌에 몇만 년 그냥 앉아 있으면 궁둥이가 다 물러질 거 아니에요? 여러분, 앉아 있는 걸 좋아하거든 한 3일 동안만 앉아 있어 보라구요. (192-30, 1989.7.2)

그래서 하나님은 뭘하고 있느냐? 기독교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영원히 영광 가운데…. 혼자 앉아서 무슨 영광이에요? 영원 전부터 오늘날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 `오, 내 권력 좋구만. 내 이 전지전능하고 요사스러운….` 그거 뭐해요?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191-23, 1989.6.24)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왜 지금까지 수만 년 역사, 인류역사를 말하게 되면 85만 년에서 150만 년까지 잡고 있는데, 그런 기나긴 장구한 세월 동안 왜 인간을 요 꼴로 만들어 왔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거 다 허황한 논법입니다. 왜 못하느냐 이겁니다. 왜 못하느냐? 조건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162-187, 1987.4.12)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 인간은 속되다고 하지만, 잘못 알았습니다. 저 나라에 가 보라구요. 오늘날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자기들도 하면서…. 그 아버지라는 게 뭐예요? 거룩하고 상대할 수 없는 관계에서 아버지란 말이 벌어져요? 그건 벌써 처음부터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모순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 총재가 말하는 것은 사리에 닿습니다. (240-192, 1992.12.13)

내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나님이 처음으로 인간을 아들딸로 지었는데, 그 아들딸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것을 봤겠어요, 못 봤겠어요? 인간이 타락해서 쫓겨났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인 것을 기성교회 신자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있으면서 전지전능해서 무엇이든지 다 할 줄 아는데, 그런 하나님이라면 왜 수천 년 동안 이렇게 인간을 구원 못해 주느냐 이겁니다. 그걸 어떻게 답변할 거예요?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를 청산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226-304, 1992.2.9)

하나님이 절대 바라는 것이 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게 뭐예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바라는 게 뭐냐? 능력이에요? 오늘날 기성교회, 기성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공의(公義)의 심판주로 와서 선한 사람은 천국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 재판장이 좋아요? 세상에 재판장이 좋아요? 무슨 고약한 하나님이 돼가지고 지옥으로 보내고 천국 보내게끔 만들었어요? 논리적으로 전부 부당한 처사라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211-77, 1990.12.29)

기성신학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이것은 우주 생성의 본성적 원리에 위배되는 논리입니다. 기독교의 전통적 주류 사상이 사랑이라 했는데 속된 죄인과 거룩한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어요? 이론적 근거를 대라 이겁니다. 이론을 못 대면 허무한 것입니다. 가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절대적인 하나님 자신이 절대복종하고, 절대자인 하나님의 생명을 버리더라도 위하고 싶고 갖고 싶은 상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204-100, 1990.7.1)

오늘날, 기성신학자들이 말하기를 `신앙 전체를 우리는 비판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의 신관, 인생관에 대한 모든 것을 재검토할 때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사조는 `피조물은 거룩하신 창조주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 혼자서 사랑하겠느냐?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뭐냐? 하나님 혼자 하겠느냐? 묻게 된다면 대답을 어떻게 할 거예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77-318, 1975.4.30)

기독교에서는 절대적 하나님만 믿으면 무엇이든지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국가가 나왔고, 피를 흘린 것입니다. 사랑이란 논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제일이라고 하는 전제 아래서는 아무리 가 봤자 사랑의 하나님 꽁무니만 따라다녀야 될 것 아니에요? 사랑이란 것은 대등한 개념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그런 개념에서는 수평이 안 되고서 수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독재 역사가 나오고, 피 흘리는 역사가 기독교를 등에 업고 나옴도 하나님만을 절대시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대신 칼을 든 것도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도 절대자지만, 절대자로서 절대사랑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것을 논의한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염원이 있다는 사실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겁니다. (219-182, 1991.8.29)

이 피조세계가 생겨나게 된 동기가 뭐냐?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오늘날 기성신학의 신관(神觀)이 그래서 틀렸다는 겁니다. 절대적인 힘의 하나님, 힘만 가지면 다 된다는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문화가 거쳐가는 데는 피를 흘려 왔습니다. 서구 문명이 기독교문화를 따라 발전해 왔지만 이제 기독교문화는 종말세계에 파탄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는 것을 이런 논리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9-31, 1990.11.25)

역사는 과학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근원을 파악하고 종의 기원을 탐구해가지고 근본을 추구하는 과학의 발전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종교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 주체적인 관을 가지고 세계가 어떻고 창조의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해가지고 하나님을 입증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할 텐데 그런 종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그런 종교의 내용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11-141, 1990.12.30)

인간이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되고 절대자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지음받았다면 인간의 창조에 동기와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 동기와 목적이 밝혀지려면 절대자가 어떤 분인가 하는 문제, 즉 올바른 신관(神觀)이 우선 세워져야 합니다. 올바른 신관이 세워짐으로써 그분의 창조의 동기와 목적이 밝혀질 것이고, 따라서 평화를 위해 절대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110-253, 1980.11.27)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유일하며 불변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견지에서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의 기원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신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인생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물질관, 이것을 확실하게 하는 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행복의 세계를 우리는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77-260, 1975.4.14)

종교분쟁의 근본원인도 역시 본체론의 애매성에 있습니다. 절대자는 오직 하나이며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절대자만이 바른 신이며 그 외의 신은 참신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종교마다 절대자가 있는 셈이 되어 절대자가 여럿이라는 배리(背理)가 성립됩니다.

따라서 모든 종교의 신은 상대적인 신에 불과하였다는 결론이 되어 각 종교를 통해 세워지기로 되었던 절대적 가치관, 즉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관한 이론은 상대적인 것에 머물고 있습니다.

즉 이때까지의 종교는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관을 세울 수 없다는 결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가 절대자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122-303, 1982.11.25)

각 종교마다 그 교리가 성립되는 근거로서의 절대자가 있습니다.

유대교의 절대자는 여호와신이요, 기독교의 절대자는 갓(God), 즉 하나님이요, 회회교의 절대자는 알라신입니다. 유교나 불교는 절대자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교의 덕목의 근본인 `인(仁)`은 천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천(天)`이 유교의 절대자라고 볼 수 있으며, 불교에서는 제법(諸法)은 항상 변화하며 진리는 제법의 배후에 있는 `진여(眞如)`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니 진여가 불교의 절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2-301, 1982.11.25)

새로운 종교를 위한 본체론은 종래의 모든 절대자가 각각 별개의 신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신임을 밝혀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 신의 속성 일부를 파악한 것이 각 종교의 신관이었음과 그 신의 전모를 옳게 파악하여 모든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형제적 종교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본체론은 하나님의 속성과 함께 창조의 동기와 창조의 목적과 법칙을 밝혀 그 목적과 법칙이 우주 만물의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도 결국 이 우주의 법칙, 즉 천도와 일치함을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122-304, 1982.11.25)

통일교회 원리가 위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창조성이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창조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타락했느냐 하는 실질적인 논리가 있습니다. 그 다음엔 역사관이 있습니다.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방치해 두지 않고 재창조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목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일목요연하게 파헤쳤다는 것입니다. (208-298, 199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