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설교는 은혜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예절과 의식

4) 설교는 은혜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① 설교의 실제

설교는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 설교해야 합니다. 정신을 전부 다 거기에 집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 단상에 설 때는 해산부(解産婦)가 산실(産室)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경지에 가면 준비가 필요없습니다. 설교 내용이 문제가 아니고 그런 심정이 돼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96-168, 1978.1.3)

설교하는 시간은 어떤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느냐 지옥에 들어가게 하느냐 하는 경계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대해 궁금했는데 한번 가보자!` 하고 교회에 왔는데 `그 설교가 뭐야?` 그렇게 되면 그 한 사람을 완전히 모가지 자르는 것입니다. 공판정에 판사가 선고하는 그 시간보다 더 심각한 자리가 설교하는 자리입니다. (96-169, 1978.1.3)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하기 힘든 것이 앞에 나와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나와 얘기를 하면 모든 사람이 주목합니다. 갑(甲)은 갑대로, 을(乙)은 을대로, 병(丙)은 병대로, 혹은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등 자기들 나름대로 전부가 듣고 비판이나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 앞에 나와 말하는 사람은 참 힘들다는 겁니다. (39-150, 1971.1.10)

교역자는 설교에 대한 것을 늘 보충하고, 특히 교인들에게 필요하고 도움될 수 있는 것을 언제든지 공급해 주어야 됩니다. (56-12, 1972.5.10)

영적 지도자는 체휼신앙이 없어가지고는 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책을 봐가지고 설교 준비하고, 책을 봐가지고 설교하고 그러는데 그 책 가운데 하나님이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신령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76-151, 1975.2.2)

여러분이 설교할 때, 그 제목으로 옛날에 한 번 했다는 것을 식구들이 알면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기분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 걱정 없는데도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는 겁니다.

아침 햇살도 밝고 상쾌한 날씨인데도 자기 스스로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결되느냐? 갑자기 이것을 변동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없거든 더 우울한 자리로 찾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대적일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든가, 혹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서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결 방안을 세워 하루하루의 생활을 조절해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뭇 인간들의 심령을 지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30-129, 1970.3.21)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서라도 보충해야 됩니다.

그래서 안 되면 생명을 걸고서라도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30-127, 1970.3.21)

준비 못한 설교를 해가지고 은혜를 못 줄 때는, 안간힘을 다하고 안 되게 될 때는 돌아들어와서 그저 대성통곡하는 시간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겁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96-170, 1978.1.3)

아침밥을 먹을 때 새 밥 먹지요? 새 맛이 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설교할 때에도 새것으로 해야 됩니다. 영적인 면에서 새로운 무엇, 보양제(補養劑)라 할까, 그런 것을 공급해가지고, 거기에 가미(加味)시켜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미료를 쳐서 신맛이라도 내고, 짠맛이라도 내고, 그렇지 않으면 쓴맛이라도 내가지고 새 맛을 내야 합니다. (75-177, 1975.1.2)

은혜를 못 주고는 설교를 한 시간 하고 왔으면 세 시간 회개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설교를 잘못해 은혜 못 주고 그럴 때는 3배 이상 회개해야 됩니다.

한 생명을 위해 생명의 물을 주어야 되고 가꿔 주어야 될 텐데, 물을 준 것이 아니라 물을 빼앗고 땅을 뒤집어 놓고 왔다면 그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오늘의 말씀을 중심삼아가지고 은혜를 베풀어야 된다는 겁니다. (160-195, 1969.5.12)

주일날만 되면 `성경은 어디를 볼까? 찬송가 나오너라! 성가 나오너라!`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들에 대한 산 재료를 중심삼고, 성경에서 그와 같은 역사를 빼가지고 그 사람의 일과 성경의 내용을 대조해 가면서 재미있게 설교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자기 일을 말하니까 홀딱 반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겁니다. 책 보고 하려고 생각지 마십시오. 사람에게서 책도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책의 원본(原本)이란 것을 알아야 됩니다. (46-285, 1971.8.17)

교역자는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인생 수련을 많이 해야 됩니다. 불쌍한 노동자로부터 거지, 혹은 고급 관리, 혹은 권세권(權勢圈)에 있는 자리까지 한때 경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가지고 그런 상황을 중심삼고 그런 때에 공적 입장에서 겪었던 사실, 그런 걸 놓고 자기가 체험한 얘기가 실감이 나는 겁니다. (160-196, 1969.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