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죄와 탕감복귀

2)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

① 메시아를 위한 기대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는 것은 원죄를 벗기 위해서입니다. 원죄를 벗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권과 사랑권 내로 새로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만들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를 접붙여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돌감람나무와 같은 인간들을 참감람나무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부정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긍정, 전폭적인 긍정을 제시하는 과정을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본질 본상이 돌감람나무가 아니라 참감람나무화하고, 완전히 선만을 위주한 그런 사람으로 등장하여 하나의 가정, 하나의 씨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를 형성해 나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바라는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41-63, 1971.2.13)

믿음의 기대를 뭘로 복귀합니까? 제물로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기대는 타락성 근성을 벗는 것인데, 그 타락성 근성은 가인 아벨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타락성 근성이 복귀되려면, 타락성 근성이 없어져야 되기 때문에 혈육적인 감정이 완전히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동으로 가라!` 하면 `예` 해야 하고 `서로 가라!` 해도 `예`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의가 있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의가 있어가지고 복귀가 되나요? 절대적으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46-234, 1971.8.15)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있어야 됩니다. 실체기대가 완결된 후에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기대가 완결된 후 메시아를 위한 기대의 자리에 서는 것은 누구냐?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는데 아직까지 그 혈통을 초월하지 못했습니다. 그 혈통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혈통을 바꿔쳐야 하는데 인간이 자기 혼자서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47-13, 1971.8.19)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첫째는 부모를 잃어버렸고, 둘째는 사탄의 피를 받았고, 셋째는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올라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움으로써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 하면 믿음의 기대를 이루고 실체기대를 이루어야 메시아를 바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까지 이루자는 겁니다. (54-188, 1972.3.24)

인간은 완성기준에 들어갔다고 해도, 이것은 아직도 혈통적으로는 완전히 청산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므로 혈통적으로는 아직 청산되어 있지 않습니다. 혈통적 청산을 하는 데는 반드시 메시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대, 실체기대,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타락한 인간에게는 절대로 필요합니다. 최후의 문제는 어떻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만들어 메시아를 통해 자신이 혈통 전환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55-136, 1972.5.7)

믿음의 기대, 실체기대를 완성해가지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어받아 메시아와 접붙이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돌감람나무 되었던 것을 참감람나무로 돌이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서 선한 하나님의 혈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만 신랑 신부의 자리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원리의 길입니다. (64-17, 1972.10.22)

복귀의 길을 다 갔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걸 망하지 않게 하려니 이러한 내용을 갖추어 다 갈 수 있게 하는 책임자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그 메시아와 접붙이면 나는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로 말하면 믿음의 기대를 세워 실체기대를 완성하게 되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게 된다는 말이 있지요? 그것이 그 말입니다. (63-340, 1972.10.22)

복귀도상에서 종의 종 시대에서부터 종의 시대를 거쳐 양자의 시대, 직계의 시대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완전히 종의 종 시대를 거치고, 종의 시대, 양자의 시대를 거쳐 직계시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직계의 시대와 인연을 맺는 데는 그냥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원리에 의해 믿음의 기대를 거치고 실체기대를 거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거쳐야 합니다.

즉 메시아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참아들입니다. 양자와 참아들은 혈통적인 관계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통 전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55-192, 1972.5.9)

자,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은 죽을 고생을 하라 이겁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기 위해 종 새끼가 되라 이겁니다. 천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한국 백성은 종 새끼가 되라 이겁니다. 종이 되라는 겁니다. 거기에 있어 주인이 돼야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양자가 되는 것은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실체기대를 복귀해야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해야 됩니다. (62-259, 1972.9.25)

여러분은 악을 굴복시키고 선을 남김으로써 악이 자동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리적으로 말하면 실체기대 완성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58-18, 1972.6.6)

이스라엘이 아무리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국가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 가인 아벨의 실체복귀시대, 즉 실체기대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찾아진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삼고 가인적인 국가와 함께 천사장형 국가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것은 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이 형인 가인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죽는 자리, 즉 맞는 자리에 들어가서 죽지 않고 살아서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복귀의 기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30-47, 1970.3.15)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 먼저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는 자기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닦아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스스로 목적을 향해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되돌아와서 실체기대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실체기대는 무엇이냐? 아벨 앞에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기대입니다. 가인은 누구냐? 원수의 자식입니다. 이 가인을 통해 역사적인 투쟁이 벌어져 나온 것이요, 가인을 통해 악의 모체가 뿌리를 박은 것이요, 가인을 통해 지금까지 사망의 물결이 역사시대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이 모든 악의 요건과 악의 편을 여기서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벨적인 입장, 즉 하늘편에 선 사람이 반드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30-290, 1970.4.5)

우리가 갈 길은 두 길입니다. 그것은 가인과 자기를 위해 가는 길입니다. 원수를 위한 길까지 거쳐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가인을 수습해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체기대란 무엇이냐? 아벨이 자신의 길을 닦았다 하더라도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원수와 싸우며 가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30-339, 1970.4.6)

믿음의 기대가 세워졌다는 것은 조건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것을 믿을 수 있는 아담의 자리, 즉 소망적인 아담의 자리에 다시 선 것입니다. 이렇게 된 후에는 사탄과 싸워 실체기대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벨의 자리에서 가인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40-244, 1971.2.6)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실체기대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실체는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메시아를 위한 기대, 즉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43-189, 197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