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창조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참사랑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천일국 주인의 생활

제 1 장 창조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참사랑

1) 참사랑은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중심

하나님은 진리의 대왕, 선의 대왕, 참의 대왕, 사랑의 대왕입니다. (301-39, 1999.4.16)

그렇다면 하나님이 본래부터 있었겠어요, 생겨났겠어요? 하나님도 커 나왔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나님의 본성을 닮은 모든 것이 작은 세포에서 자라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커 나왔느냐? 사랑 때문에 커 나왔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커 나왔습니다.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고, 인간은 그 사랑의 대상입니다. (243-278, 1993.1.28)

하나님은 참사랑 때문에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혼자 못 가집니다. 혼자 사랑을 못 느낍니다. 물론 자체 내에 사랑이 있지만 원만히 화합하는 기쁨이 충만한 사랑을 못 느낍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피었더라도 향기가 나야 하고, 아무리 향기를 가졌더라도 바람이 불어야 향기가 날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람과 같이 상대적 자극의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210-223, 1990.12.23)

참사랑은 하나님이 창조할 때의 근원적 힘입니다. 원동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좋아하는 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같이 밥도 잡수시고, 눈도 있고, 코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런 분인데, 그분이 좋아하는 것이 뭐냐 하면, 우리 인간들이 좋아하는 황금덩이가 아닙니다. 그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지식의 대왕이요, 능력의 대왕입니다. (212-296, 1991.1.8)

참사랑의 깊이는 하나님이 태어날 적부터의 그 밑창까지 포괄한다는 얘기입니다.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기 시작한 근원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살고도 다 거기까지 못 가니, 저 세계에 가서도 영원히 그것을 향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끼리 싸우고 서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자체도 자라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깊이까지, 출발과 더불어 근원을 같이했다는 것입니다. 근원은 하나님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왜 이성성상이에요? 사랑 때문에 이성성상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246-286, 1993.4.20)

참사랑은 하나님도 마음대로 행차할 수 있는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지백체가 사랑을 중심삼고 언제나 표면에서 하나 돼도 오케이고, 내면에서 하나 돼도 오케이입니다. 북에서나 남에서나 동에서나 서에서나, 하늘나라에서나 지상세계에서나 아무데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화합할 수 있고, 사랑을 중심삼고 자율적으로 화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으로 당을 하나님 대신 세우고 완전히 하나 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 되겠다는 것입니다. (139-200, 1986.1.31)

하나님도 참사랑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하나님도 생명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남자나 여자도 참사랑이 있으면 왜 목숨을 바치려고 해요? 사랑이 생명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존재하기 시작했느냐? 사랑 때문에 존재하기 시작했고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었더라면 하나님도 생겨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모든 것은 쌍쌍제도입니다. 광물세계도 쌍쌍제도이고, 급은 낮지만 양이온과 음이온도 사랑을 표시하면서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버런 문이 이 세상에 나와가지고 역사 이래로 처음 발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참사랑을 절대시하고 그것에 절대 복종하면서 살겠다 하신다는 그 기원을 발표한 것은 레버런 문이 역사상에 처음입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203-103, 1990.6.17)

참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개재시키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개재되지 않고는 참이라는 말, 참이라는 남자, 참이라는 여자, 참이라는 가정, 참이라는 진리, 참이라는 사랑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개재해야만 그것들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대왕이요, 선의 대왕입니다. 참의 대왕입니다. 사랑의 대왕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개재시키지 않은 데는 선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빼 버리고 하는 것은 사기판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개재시킴으로 말미암아 참의 기준, 영원한 기준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301-39, 1999.4.16)

그렇다면 참된 사랑과 거짓사랑을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느냐? 자기 중심삼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은 악마와 통하는 사랑이요, 상대를 중심삼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은 천지 이치와 하나님과 통하는 사랑입니다. 여기에 경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고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 90세 된 할머니가 70세가 넘은 아들에게 `얘 아무개야, 오늘 어디 나가면 차 조심해라!` 하며 여전히 옛날 어릴 때의 아들과 같이 대해 줍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얘기를 90세가 넘어서 하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천만 년이 가더라도 지치지 않는 그런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142-333, 1986.3.14)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또 투입하겠다는 자리,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릴 수 있는 자리에서만 참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천지를 꿰뚫는 것입니다. 죽음의 세계도 뚫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도, 강한 마음이라도 어디든지 뚫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사랑은 비밀의 방도 통합니다. (256-179, 1994.3.13)

제일 빠른 속도를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과 일치된 힘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땅 끝에서 하나님도 `오소!` 하면 온다는 것입니다. 못생긴 손녀라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할아버지가 그를 따라갑니다. 사랑이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301-127, 1999.4.25)

사랑이란 것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영광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영광을 누린다 할 때는 자기 혼자 있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백만장자가 되어 금밭에 앉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인연을 완전히 갖추어가지고 변함없이 행복한 자리에 있는 것을 영광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완수한 후에, 완성 단계의 기준을 거친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영광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158-297, 1968.2.4)

참사랑은 하나님보다도 높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이라도 사랑의 상대는 몇천만 배 더 훌륭하기를 바란다 그 말입니다. 그 말은 거꾸로 하면, 참사랑의 대상은 하나님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상대가 여러분보다 더 높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입니다. (274-22, 1995.10.25)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계에 가면 참사랑의 빛깔과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 참사랑에 화하면 안 통하고 안 들리는 데가 없이 다 통합니다.

참사랑의 주인인 하나님의 솜털이 있다면 그 솜털도 참사랑에 속해 있기 때문에 까딱하기만 해도 천하가 금방 다 압니다. 예민하다는 겁니다. 감정이 우주적 감정까지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304-16, 1999.9.5)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들이 하나님, 창조주 이상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 그 길을 밟아 갈 수 있는, 따라갈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어서 하나님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주의는 참사랑주의인데, 참사랑주의는 타락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투입할 수 있는 길을 찾지 않는 한 그 길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하는 역설적인 논리를 가르쳐 줬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268-162, 1995.3.31)

사랑의 길을 찾는 사람은 어떤 것을 마련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내가 합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머물 수 있는 중심입니다. 내가 그 뜻과 하나 될 수 있는 중심입니다. (103-133, 197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