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6권 PDF전문보기

역사의 주인

역사는 몰리고 몰리는 무리들이 주역이었습니다. 역사를 지배해 나온 주의는 그런 무리들에 의해 만들어 졌습니다. 고대광실(高臺廣室) 높은 자리에서 호화찬란히 살면서 진수성찬을 즐기는 무리가 어떤 주의를 만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몰리는 자리, 밟히는 자리, 불쌍한 자리에 있는 자들이 만들어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발걸음을 내디딜 때 눈물의 발걸음을 옮긴 자들입니다.

민족이 부패하고 세계가 혼란스러울 때, 세계를 붙들고 하늘을 대신하여 눈물 흘리는 무리는 세계적인 엘리야의 후계자들입니다. 그런 무리들은 엘리야가 염려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야요, 나는 나'라고 하다간 망합니다. 하늘이 울고 하늘이 슬퍼하시거든 같이 울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합니다.

말씀으로만 계신 하늘이 아닙니다. 말씀과 실체와 심정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도 모르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몸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하늘이 주장하시는 하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심정이 어떤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체가 어떤 존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자기가 하는 말이 어떤 말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의 잘남을 자랑합니다. 허나 그것을 자랑한다 한들 몇 세기 동안이나 자랑할 수 있을 것인고. 과거 어느 시대에 자랑하던 이름은 몇 세기나 갔던고. 그러기에 인간에게 오직 자랑할 것이 있다 할진대는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민족이 공통적으로 간 길을 간 사람이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린 것이 아니라,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간 사람들이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려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가 걸어온 노정도 이런 노정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는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알고, 예수 이후 성신을 보내어 2천년 동안 수고한 역사를 안다 할진대, 현실의 기독교를 바라보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인들은 이 시대의 교인보다도 더 교회에 가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보다 더 잘 예식과 형식을 구비했습니다. 말씀이 없었던 것이 아니요, 역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요, 자랑할 조건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유대교를 하늘 앞에 자랑할 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뇨, 그것은 그들이 하늘의 새로운 섭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죽음을 연상하여 '예수님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갈보리산정에서 못박히던 예수님의 몸이 내 몸이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 울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친구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죽으면서도 말 못했던, 심중에 사무치도록 마음으로 그리던 신부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 신부를 만나는 날에야 마음을 터놓고 그의 생애 전부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6천년 동안 역사하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의 서글픔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은 성경에 있는 말씀과는 다를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슬픔이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들 딸 앞에 있다 할진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 앞에 있다 할진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때는 점점 최후의 해결점을 향하여 흐르고 있습니다. 역사도 흐르고 있고, 종교도 흐르고 있고, 주의도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니 여기도 싸움이요, 저기도 싸움이요, 여기서도 탄식하고 저기서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기에, 믿을래야 믿을 수 없고 걷잡을래야 걷잡을 수 없는 때에 엘리야가 나타나 새로운 심정의 일단을 토로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하늘의 심정을 토로하는 어떤 새로운 음성은 없을 것인고,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