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가는 길은 이상의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8권 PDF전문보기

뜻이 가는 길은 이상의 길

통일교회 선생님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남의 하나님으로 두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욕심은 죄가 아닙니다. 선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여러분을 사랑하면 여러분도 좋아해야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사랑하려고 하는 한국이 선생님을 제일 반대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뜻이 가는 길은 이상의 길입니다. 이상은 반드시 사랑을 중심삼고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 영원한 안식의 터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느 환경에서도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안정권이 조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인은 가능성이 있는 입장에서 그곳을 향해 가야 됩니다. 그런데 가능성이 있는 입장에서 그곳을 향해 가야 됩니다. 그런데 가능성이 있는 입장에서 간다고 생각하는 종교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성을 느끼면서 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느끼면서 갑니까? 못 느낀다면 여러분은 또 보따리를 싸서 그것을 찾아가야 됩니다. 선생님 역시 그렇다면 또 다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찾아가야 됩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라. 주님만을 사랑하라는 말은 인간 앞에 사랑의 동기인 동시에 결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2천년이라는 긴 역사과정에서 희생해 나왔지만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여러분, 끝날이 가까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최후의 결승점이 가까와지고 있습니다. 골인을 하여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한 발자국을 남겨 놓고 '내 뛸건 다 뛰었는데'하며 뒤에 오는 사람에게 '너희들 지금 뛰어오는 구나 난 이만큼 왔는 데'하고 구경만 하면서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천리길을 달렸다 하더라도 남은 한 발자국 때문에 몇 만리 길을 더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이 되어 기독교가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 골인할 수 있는 최후의 결승점에 도달했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쉰다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는 만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데 그들은 결승점에서 쉬고 있는 것입니다. 쉬다 보니 '아이고 여기가 어디야! 뛸 때는 몰랐는데 여기에 무엇이 더 붙었구나'하면서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현재의 기독교와는 달라야 합니다. 같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하에 뜻이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선의 길입니다. 그러면 선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욕심을 채우는 것입니까? 남의 지갑에 있는 것을 잡아채는 것이 선입니까? 아닙니다. 선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포화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포화선을 넘어갑니다. 포화상태에서는 그 이상은 못 올라가지만 사랑은 그 기준을, 그 포화선을 돌파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사랑으로 그 활동범위를 넘어 하나님의 가슴까지 그것을 연결시키어 인연을 맺으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