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시대 앞에 부름 받은 우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1권 PDF전문보기

역사시대 앞에 부름 받은 우리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여러분이 선조를 추앙하는 반면에 그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조들이 나라에 반향을 일으켰던 그 이상으로 세계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끝날에 있어서 자각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자기가 추앙하는 것이 자기가 바라는 소망의 가치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리에서 그 선조를 추앙하는 것을 제일로 삼는다면 그 선조의 갈 길을 막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추앙하는 데 있어서 예수님만을 추앙하는 입장에 서지 말고, 그가 바라던 역사적인 소망과 접할 수 있는 가치를 흠모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옷깃을 여미며 예수님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님 앞에 한의 조건만 남기게 됩니다. 예수님을 추앙한 것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고 그것을 본으로 삼아 새롭게 자각하여 나가는 것을 예수님이 고대하시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뿐만 아니라 역사상의 어떤 도주면 도주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혹은 시대적인 어떤 지도자면 지도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그들은 후손들이 자신들을 중심삼아 개인적인 가치만을 결정하는 것을 원치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상이나 이념을 재료로 삼아 가지고 더 높고 더 귀한 가치를 찾아서 예수님이나 도주나 지도자의 반영으로 말미암아 인연이 맺어지게 될 때, 그들이 역사과정에서 결실맺어 나왔던 사실을 인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이 역사와 시대의 결실로 맺어지는 동시에 결실시킨 그 자체도 현실에서 결실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영계에 있는 선조들, 즉 성인 현철들이나 지도자들이 이 땅 위에서 부활적인 현실 과정을 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원리 가운데 부활론에서 소개되는 내용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처해 있는 우리의 자각된 입장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오랜 역사의 기준과 시대의 기준에 밀려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오늘의 시대 앞에 불리움을 받았으니, 불리움을 받은 내 자체도 당당히 역사와 시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 또 그래야 나를 믿어 줄 하나의 상대가 나타날 수 있는 당당한 동기가 생긴다'고 할 수 있는 자각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입장에 계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인 입장과 시대적인 입장과 미래적인 입장으로 계시지만, 주체성을 지닐 수 없는 입장에 계십니다. 즉, 역사적인 아버지로서의 주체성을 지닐 수 없는 입장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맺힌 복귀노정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자식들이 된 우리들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어 할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승리의 권한을 가지고 아들딸을 세웠다는 주체적인 입장에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미래에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중심도 결정하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자각하게 하는 입장에 서시지 않고는 하나님도 우리와 더불어 결정적인 위치에 서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이런 입장에 있는 개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당당하고 엄숙하고 역사상의 모든 가치를 합하여도 바꿀 수 없고, 시대와 비교해도 바꿀 수 없는 우주적인 새로운 자각관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통일교회에 있는 여러분들을 바라보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런 자각된 입장에 서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회에 나가게 되면 거기에 동화될 수 있는 무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와 환경에 동화될 수 있는 무리가 많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