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손이 되는 훈련을 잘 받으려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1권 PDF전문보기

종손이 되는 훈련을 잘 받으려면

거듭 말하는데 우리는 종가집 자손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종가집 자손은 될 수 없는데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도둑놈입니다. 그런 사람은 유치원생이 대학원 논문 쓰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보따리 싸 가지고 가서 더 커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여기는 누가 오라고 하는 곳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나라를 움직이는 데 30명 이내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자진 후퇴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후퇴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언제나 하나님에게 진 빚을 염려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면 한껏 열어 놓고 먹이고 기르고 훈련시켜 가지고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훈련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안 좋아합니까?

훈련을 받으면 밥 세끼가 모자라니 네 끼씩 먹어야 되겠고, 잠자리도 우리 집보다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망합니다. 훈련을 받으려면 무지무지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훈련받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손들지 않은 사람은 탕감조건에 걸릴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하고 어울리기 힘든 사람입니다. 훈련받겠다는 사람 다시 손들어 봐요. 내리고 싶은 사람은 내려도 괜찮아요. 전부 훈련받겠다고 손들었으니, 무지무지한 훈련받아도 괜찮다는 말이에요? 「예」

그러면 그 무지무지한 훈련은 어느 정도일 것이냐? 훈련받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 뒤에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사람도 훈련받기는 받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길가에 상점이 있으면 음료수 사다 마시고 과자 같은 것도 먹으면서 따라다녀도 훈련받기는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받는 훈련이 잘 받는 것이겠습니까? 훈련을 잘 받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효의 기준을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초월해서 일관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어느 시대에는 이것이고, 어느 시대는 저것이 되는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녀의 기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참된 부부가 사랑하는 것도 역사를 초월하여 칭송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역사의 어떤 시대에도 세워질 수 있으려면 훈련을 잘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훈련을 잘 받아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 받을 자신이 있느냐 하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에서부터 만 가지까지 전부다 동정을 바라는 여러분들인 것입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 중에는 `저분이 왜 저렇게 큰 소리를 하나'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판하려 해도 별수 없이 내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학박사나 일국의 수상이라 하더라도 이 원칙에 위배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의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어떤 진리나, 어떤 참, 어떤 공식, 어떤 단위, 즉 하나에 하나가 더해져서 둘이 되는 원칙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 혹은 여자의 권한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못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를 움직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약속을 했다가 지키지 못하는 하나님이 된다는 결론이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원칙을 개조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을 훈련시켜야 되겠는데 어떤 훈련을 시키느냐? 무지무지한 훈련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 무지무지한 훈련의 정도는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삼천만을 대신하여 고생을 해야 되고, 삼천만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계를 대신하여 선두에 서서 천국을 건설하자고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고방식을 갖기 위하여 훈련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