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뽑아 버리고 기쁨을 소개하는 장본인이 되신 예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6권 PDF전문보기

슬픔을 뽑아 버리고 기쁨을 소개하는 장본인이 되신 예수

그러면 인류의 조상이 아담과 해와는 타락하고 나서 얼마나 슬퍼했느냐? 에덴 동산,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유의 세계에서 추방되어 나오게 될 때 그들은 얼마나 슬픔을 느꼈겠느냐? 그들은 어떠한 울음을 울었고, 어떠한 곡절의 심정을 가졌으며, 미래를 걸어 놓고 어떠한 낙망의 걸음을 걸었겠느냐? 또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슬퍼하셨겠느냐? 이러한 것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연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 아담이 통곡하던 그 이상 통곡할 수 있는 하나의 효자, 그걸 바라보며 비통해 한 하나님의 아픈 가슴 이상의 아픔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효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어느 때 나타날 것이뇨?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십자가 도상, 즉 자기의 운명이 경각에 달해 가지고도, 크나큰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사명이 미완성으로 끝나게 되어 절망상태에 임하게 될 때, 자기나름의 역량과 수고를 다 했지만, 그것을 부정해 놓고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시여,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말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지고, 한날의 승리를 표방하며 수난의 역사를 엮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곡절이 있더라도 버릴 수 없는 이스라엘 민족, 치열한 역사의 싸움 속에서도 슬픔의 결정체로 남아져 온 이스라엘 민족, 이들이 하나님을 배반한다고 해서 하나님도 이들을 저버리게 된다면 하나님의 4천년 복귀역사의 수고가 일시에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맺혔던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아들의 입장에 선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하나님에게 있어서 역사과정에서 제일 슬펐던 일은 아담 해와의 타락이었습니다. 그 다음 슬펐던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었습니다. 어떠한 나라가 망했을 때 그 나라의 운명을 비통해 하고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수천 수만의 애국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슬픔은 민족적인 한계내의 슬픔에 불과한 것입니다. 타락의 비운을 벗어나지 못한, 민족의 희망을 위해 살다가 죽어 갔을 뿐이지, 세계를 넘어 역사적인 심정의 중심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죽어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죽어 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담의 슬픔을 대신하여 그 이상의 슬픈 마음을 갖고 울 수 있었기 때문에 만민을 구할 수 있는 구주, 즉 슬픈 세계의 뿌리를 뽑아 기쁨의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장본인이 될 수 있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러한 사실은 논리적인 모순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맹목적으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이런 입장보다 슬픈 세계를 소화할 수 있고 슬픔을 체험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모든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슬픈 자리에서 슬픔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것을 판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판결짓지 못하는 한 선은 이 땅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교회는 기쁜 역사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