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이 될 수 있는 사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2권 PDF전문보기

영장이 될 수 있는 사람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종족이 있습니다. 이 수많은 종족 가운데에는 수많은 개인이 있습니다. 나는 그 수많은 개인 가운데의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밖으로부터 몰아치는 세계적 악의 운세는 역사적인 한계선을 놓아 두고 몰아쳐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생활권내에 있어서 하루의 인연을 중심삼고 파동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어느 한 종족에 인연되어 있는 나 자신을 두고 볼 때, 내가 거쳐 가야 할 승리의 세계, 소망의 세계가 얼마나 먼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서 그냥 살면 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을 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온 천주를 주관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의 권한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오늘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영(靈)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겐 그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영(靈) 중의 장(長)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가지고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으로 말미암아 점령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하게 되면 장(長)은 영(靈)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암암리에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얼마나 복잡한 입장에 있습니까?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 개체가 안식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의 경계선 안쪽이냐는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겠느냐? 일본이겠어요, 아니면 중국이겠어요? 이 문제가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이 어디냐 할 때 대한민국 안이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안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롭게 변혁시켜 가지고 하늘 편으로 복귀된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은 필요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자체가 세계의 승리적 복귀의 터전, 안식의 터전이 되느냐 하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 복귀를 위한 안식의 터전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권내의 아들로서 정성들인 수도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의 도면 도, 군이면 군 권내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아들딸은 될지언정 하나님 나라 정체 앞에 대표로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장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장이 아닙니다. 영장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장될 수 있는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자는 적어도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그 소원을 이루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천국이 되느냐? 하나님의 천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오시며 복귀섭리를 추진시켜서 오늘 대한민국의 통일교회를 찾아오신 것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통일교회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 교단을 이끌고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요, 세계의 중심의 자리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동이 쳐 오는 사망의 물결들을 전부 다 극복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쪽에 건너가더라도 이쪽을 방비할 수 있는 모든 비법 및 장비를 갖추어 놓아야만 사망권내에 남아질 수 있는 천국의 기원이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목적하는 곳에 가 보지 못한 채 강을 건너 가야 할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강이 노도나 폭풍에 시달리면 그 강을 건너는 우리 자체 역시 시달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원한 안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서 이 땅에 왔다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된다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