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적 유대를 맺는 것이 영통보다 중요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3권 PDF전문보기

심정적 유대를 맺는 것이 영통보다 중요

앞으로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유혹이 많을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게 되면 어린아이들도 여러분들보다 낫다는 거예요. 어린아이들도 전부다 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린애를 통해서 뭔가 한 사람도 있잖아요? 그러므로 영계를 통하면 그것을 전부다 아는 데 그 아는 것이 전부다 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훌륭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계는 천태만상입니다. 그것보다 귀한 것은 자유의 본원지입니다. 즉, 심정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 심정의 기준에 연결시키지 못하면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그냥 얼굴만 알고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내는 친구의 집에 가면 자유스러워요? 자유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친구 사이 에도 반드시 서로의 심정적 유대가 있어서 내가 친구의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고, 또 친구가 내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어야 자유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적으로 가까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적인 문제는 전부다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문제되는 것이 심정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문제시한 것들은 문제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 선생님이 있으니 이만하지 없으면 전부다 혼란이 벌어질 것 아니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는 지금부터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떤 난문제를 중심삼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삼각지대에 들어가 고민하게 될 때,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게 되면 그 문제가 싹 풀려 마치 봄과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번에 알게 되는 거예요.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그저 마음이 맹맹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지 않거나 영계에서 가르쳐 주지 않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심정적인 인연을 통하여서 그 지향성이나 방향성이 하나님과 일치되는 그런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좌우가 일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은 그렇게 위험스럽고 어려운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영적으로 굉장한 역사를 하던 박운내라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부인이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다'라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그 부인을 찾아가서 손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성들여 그 자리 까지 올라간 길 즉, 여자의 길과 남자의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고 거기에서 '내가 남자고 당신은 여자니 당신은 나에게 굴복하시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 어떻게 그 여자를 완전히 굴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에게는 문제였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굴복시키려면 그 여자가 닦아온 길과 체휼한 것을 그 사람이 실지로 체휼한 것보다 더 심정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소개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자면 그 여자가 지금까지 역사를 가려 나오면서 체험한 것이 많았지만, 그것들은 전부가 산발적으로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그것들을 전부다 지나간 날의 한 영적 현상이라고 해서 다 흘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것이 어떤 체계적이요 계통적인 일면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이것은 전후 관계가 이렇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점진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가지고 이러한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나왔다'고 그 종합적인 가치를 그 여자에게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여자가 그런 입장에 나오기까지의 심정적인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즉, 마음의 친구, 심정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러이러하니 당신에게는 이런 사명이 있소' 하고 가르쳐 주면 그 사람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계에서 그때까지 그 사람을 통해 역사를 해주었던 관계로 그 노파는 선생님의 입장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입장은 어떤 입장이요' 하면서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해야 주고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방향이 달라지고 입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본래 남자와 여자는 입장이 다르고, 그 범위도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관계 없는 것같이 느껴져 거기에서부터 부정하게 되니까 서로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는 하나 되었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중심삼고는 하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여자는 내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주고받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에 그 여자가 알려고 해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체험한 것과 다르더라도 반발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순응하여 최고의 기준까지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계에서는 어떻게 역사하느냐?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발전적인 역사를 해주는 것입니다. 발전적인 역사를 하는 데는 지금까지처럼 토막토막 잘라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인정하게끔 해명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자기가 앞에 서고, 내가 자기를 따라 가면서 그런 가치의 내용을 보다 빛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기를 바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벌써 틀렸다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기의 말을 다 들어주었고, 자기의 일을 도와주었으면, 그때부터는 내 말을 듣고 내 일을 도와주는 것이 인간 세계에서의 예법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그런 입장에서 내 말을 듣고 내 심정의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면 내가 자기보다도 더 고생을 했고, 자기보다도 더 엄청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숙이지 말라고 해도 숙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말을 듣다 보니 자기의 입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싫다는 거예요. 거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여자가 지금까지 아무리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해도 소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 여자가 정성들인 것을 나에게로 다 옮겨 가지고 묶어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에서의 빼앗기 싸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