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숙한 열매가 되기 위한 조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6권 PDF전문보기

완숙한 열매가 되기 위한 조건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볼 때, 참이라는 것은 언제나 과거의 열매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인정한 것이 결실된 열매입니다. 이것은 모든 문제의 비판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요, 현재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미래의 출발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는 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이 먼저 앞서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앞서지 않습니다. 미래의 출발은 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열매 자체는 그 나무가 일년 동안 지내온 역사적인 결실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열매인 동시에 현실의 열매로서 보다 가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의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것을 미래의 출발로서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자를 구하려 할 때, 제일 나쁜 것을 취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상지상(上之上), 귀한 것 중에서도 제일 귀한 것을 취하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참을 가리켜 유일성을 갖춘 미래의 출발 기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결실이라는 것은 과거의 결실인 것입니다. 그것은 현재의 중심이 되고 미래의 출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이라는 것은 그 자체에는 과거가 떠난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며, 현재가 떠난 것이 아니라 집착되어 있고, 미래가 흡수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참이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가치를 종합한 주체적인 하나의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6천년의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 그 6천년 역사는 복귀섭리의 완성기를 찾아나온 것입니다. 그 완성기 안에 전부 들어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아브라함도 사는 것이요, 모세도 사는 것이요, 예수님도 사는 것이요, 역사적인 모든 미완성의 요인(요인)이 여기에서 전부 부활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원하던 전체의 가치를 완숙하게 완결시키는 자체가 완숙된 결실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 결실자체가 완전하기 때문에 현재에 있어서 전체의 생명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미래는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게 되어 있지 나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최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참된 것은 최후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최후까지 남아질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새로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일시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이르기까지 3과정의 종합적인 요인이 되어야 됩니다. 과거가 거기에 끊임없이 연결되어 그것이 과거의 환경을 극복하는 요인으로 남아져야 되고, 시대적인 모든 요인으로서 남아져야 되고, 미래의 요인으로서 영속적으로 남아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완숙한 결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에 하나님은 세계를 버리고라도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나무를 베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열매 하나를 간직하실 것입니다. 나무가 불타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씨를 품고 보관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나무를 가졌다 하더라도 완숙한 열매가 없는 나무라면 그 나무가 무엇에 필요하겠습니까? 나무를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결실된 생명, 열매를 지니는 것이 보다 가치있는 일입니다. 나무는 후대에 생명을 연속시킬 수 없지만 결실은 후대에 생명으로 연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가치있는 것은 결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입장에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지나간 역사를 나를 위한 것이었고, 현재의 이 시대는 나를 세우기 위한 것이고, 앞으로 올 역사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관점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가는 길에는 곡절이 많을 것입니다. 중심에 서 있으면 곡절이 많은 것입니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봉우리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다 맞습니다. 그것은 그 지형을 종합한 하나의 중심 물체로 나타났기 때문에 사방의 모든 시련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 부딪치는 시련을 모두 극복해야 됩니다. 그 모양이 아무리 싫다 하더라도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남아진 그 자체는 역사가 길면 길수록 비례적으로 그 가치가 커지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그 외로움에 비례되는 가치가 여기에 대두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망은 자동적으로 깃들게 됩니다. 여러분이 높은 산정에 오르기를 바라는 것도 그런 의미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