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는 제물의 과정을 엮어 온 역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8권 PDF전문보기

인류역사는 제물의 과정을 엮어 온 역사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제 '제물의 완성'이라는 말로 돌아가 봅시다.

제물이 왜 필요하냐? 고생한 어버이를 모실 수 있는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버이가 고생하며 걸어온 길을 더듬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고 난 후에야 비로소 효도의 방향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버지를 알지도 못하고서 무턱대고 효도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과거에 이런 고생을 하셨다. 나를 키우시고, 나를 교육 하시기 위해서 이런 수난의 길을 걸어오셨다' 이렇게 아버지의 배후를 들추게 될 때, 비참하고 어려운 사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이 자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효성의 길로 방향을 돌이킬 수 있는 키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눈물이 끊이지 않는 부모의 배후를 아는 자식은 부모 앞에 불효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또는 종교에서는 수난의 길을 가라, 희생의 길을 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그런 명령을 했겠느냐? 좋아서 그렇게 가르쳤겠느냐? 응당 인간이 수난길을 가야 하고 희생해야 하지만, 수난길을 감에 따라 하나님은 더 수난을 당하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희생하라는 말, 봉사하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말이냐? 여러분, 이 말이 좋은 말이예요?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고, 인간들의 수난의 대가로 말미암아 찾아진 가치를 하나님이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모르지만, 그 명령이 하나님과 직결돼 있는 문제라 생각하게 될 때, 그 수난길을 가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비참한 자리에서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해 가지고 한 사람을 내세울 것이냐? 민족을 내세우고 가정을 내세울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세요. 자기들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번번이 한탄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을 했을 때, 그 원망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 못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갖추어 가지고 배급을 줄 수 있는데도 쌓아 놓고 안 주는 그런 하나님이겠어요? 자기의 뼛골을 다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비참한 자리에서 전진하는 하나님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싫은 것은 원하지 않고 좋은 것만을 원합니다. 나는 비참한 것은 원하지 않고 행복한 것만을 원합니다. 어려운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십시오' 하는 불효막심한 녀석들이 있을 수 있어요?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나온 종교인들의 그 역사가 길면 길수록 그것이 하나님에게 기쁨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슬픔의 대상이 되어 한으로 남게 되고, 한탄의 대상이 되어 산맥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산이 아니라 산맥이 되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나 자체가 복받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놀음입니다. 이런 것을 깨닫고, 즉 하나님은 과연 슬픈 분이 틀림없으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대표적으로 세계를 위해서 나설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나님 앞에 호소한 사람이 있었느냐? 이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천년 만년 서린 한을 다 풀어 놓고, 천년 만년 통곡할 수 있는 심정을 퍼부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어느누구로 말미암아 그런 일이 벌어지는 날에는 세계에 없는 새로운 진리의 길이 정해질 수 있는 가망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역사과정은 제물의 과정을 엮어 온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