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9권 PDF전문보기

양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

그러면 어떻게 해서 단계를 이루어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느냐? 종 중의 종이 아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계통을 들고 나왔을 때에는 아들대신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아들 대신 죽음의 자리를 거쳐갔다 할진대는, 그의 제사를 아들의 제사와 같이 지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종이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과 같이 싸우는데 아들을 앞세우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다가, 아들과 같이 싸우지만 그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적인 싸움을 하는 마음을 갖고 싸우다가 아들보다 먼저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부모가 자기 자식이 죽은 날 제사를 지내고 그날을 추모하게 될 때, 자기 자식의 제사만을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식의 제사를 지내기 전에 종의 제사상을 차려 놓고 같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또 제사를 지낼 때는 그 종에게 `오늘은 너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은 너도 내 마음 앞에 잊혀질 수 없는 날이 아니냐'고 하며, 자기 아들과 같은 입장에 세워 놓고 아들 이상의 부모의 심정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종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다면, 아들은 살아 오지 못하고 그 종이라도 살아 온다면 부모는 그 종을 세워서 양자로 책정할 것입니다. 그런 심정적 터전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양자의 자리로 올라가느냐 할 때, 아들보다 먼저 죽지 않고는 못 올라갑니다. 종에서 양자로, 아들을 위해서 진짜로 죽어야 아들이 없는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 대신 대를 이을 수 있는 중간 계층을 찾아 나서게 될 때는 양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양자의 종자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아들이 없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종 가운데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말은 심정적으로 아들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선두에서 싸우고, 보다 가치 있는 중심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가 깎이고, 자기가 희생되더라도 중심을 책임질 수 있는 이중적 투쟁의 보호권을 가지고 생명을 바치는 데서만이 복귀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여러분이 성경 역사를 두고 보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 한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밖으로는 원수들을 대해 싸우고 안으로는 백성을 위해 싸우며, 죽을 고비를 넘어가는 것을 당연한 생애의 노정으로 알고 싸워 나가 가지고, 죽지 않고 남아지게 되는 그 자리가 나라가 망하지 않는 자리가 되면 그는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다구요.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타락한 세계라 할지라도 그러한 터전을 갖고 나오면….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복귀노정이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상대적 세계에서도 그런 내용을 갖추고 나올 때는, 반드시 중심자가 되고 고차적인 권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복귀의 노정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양자는 직계의 아들과 다른 것입니다. 양자는 만약 직계 아들이 오게 되면, 밤이나 낮이나 어느 때나 서슴지 않고 자기의 모든 전체를…. 아기인 직계 아들이 태어나게 되더라도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직계 아들에게 갖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유물이 자기 것이 아니거든요. 그렇잖아요? 양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도, 양자로 책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직계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을 때에 `요놈의 자식이 왜 태어났노?' 이러면 안됩니다. 이것은 사탄의 근성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때 천사장이 그 아담을 보고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아해야 할 텐데 `왜 태어났노?' 이랬다가는…. 양자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양자는 아들을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직계 아들이 복중에 있을 때에도 `아이구 안 태어났으면 좋겠는데…'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부모로 모시지만, 그 양부모가 나를 맞음으로써 심정과 뼛골에 사무치게끔 할 수 있는 행복의 자리요 희망의 결실체로서 바라볼 수 있겠느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는 거라고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자들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나 말고 직계 아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러한 인연의 도리를 남기기 위해, 양자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건 유대교는 하늘을 향해 `아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하고 바란 것입니다. 그 아들이 오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 모두 영접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나라에 어서 오소서 하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양자는 아들이 태어난 줄을 알았다면, 아들이 왔다는 것을 알았거들랑, 소문만 듣고도 달려갈 수 있는 마음에 언제나 사무쳐야 됩니다. 아들이 왔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았으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도 서슴지 않고…. 그것이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선민이 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그러한 분이 지상에 태어나게 될 때는 양자가 직계 아들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오늘 우리 원리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가인 아벨의 문제입니다.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인 아벨의 문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