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의 책임을 해야했던 유대교와 기독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9권 PDF전문보기

양자의 책임을 해야 했던 유대교와 기독교

예수라는 분은 아버지로부터 받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한테 받으러 오느냐? 양자에게서 받으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수 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이 뭐냐 하면 양자권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스라엘권, 양자들은 전부 다 내가 복받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복받겠다고 하는 것은 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복받겠다고 하는 패는 망하겠다는 패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복을 받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갖고 있는 복을 오시는 주님 앞에 넘겨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이어받아 해야 할 책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대교는 그들의 자리를 그냥 그대로 사수하려고 야단했고 이스라엘 나라도 그냥 그대로 사수하려고 야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예수 앞에 사탄 세계가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양자의 권을 사탄세계가 막고 있으니 다시 빼앗아 와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 앞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 앞에, 즉 양자에게 그 축복을 넘겨 맡긴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이라는 거예요. 요놈의 자식들…. 그래서 그들이 2천년동안 수많은 민족의 총칼에 쓰러지고 말굽에 짓밟힌 역사적인 줄거리를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비사가 아니라 사실이예요.

그러다가 비로소 1948년을 기해서 이스라엘 국가가 독립을 했는데, 독립을 했다 하더라도 자주적인 독립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 마당에서 독립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역사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국민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 것이냐? 이제부터 다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의 부를 가진, 세계의 권한을 가진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스라엘은 그 후손을 중심삼고 해원성사의 때를 못 갖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외적인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국제정세를 중심삼고 외적인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외적인 경제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 축복이예요. 그래서 지금 외적인 세계의 권세를 가진 자들이 대개, 세계적인 책임자들 가운데 3분의 2가 유대 계통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자손이라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떡 버티고 나가다가는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되어 가지고 뭘해야 되느냐? 아들이 상속권을 찾으려 할 때에 반대하는 원수와 싸우기 위해 그 나라와 교회가 몽땅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동원되는 데는 어떻게 동원되어야 하느냐? 오시는 아들을 위해 동원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자리가 있거든, 자기가 피해를 입으면서라도 내적으로 그 아들을 보호하고 외적으로 투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 싸우는 것은 주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달라요. 옮겨 주기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옮겨 주기 위해서, 옮겨 주는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싸우는 패가 가인인 동시에 양자권에 있는 패입니다.

옛날 종으로서 싸운 때는, 즉 종에서 양자가 되기 위해 싸울 때의 목적은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때는 양자가 아들을 위하여 주기 위한 싸움을 하는 때입니다.

그러면 종은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이냐? 종과 양자가 다른 것은 무엇이냐? 종은 죽더라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양자는 자연히 받았기 때문에 죽더라도 옮겨 주어야 됩니다. 다르다구요. 어느 쪽이 낫느냐면 그래도 양자가 종보다 낫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싸우고 유대교가 싸우고 기독교가 싸우는데, 싸우는 패가 복을 받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믿는다는 패들의 사상이라구요. 그것은 끝날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는 다 망한다구요.

본질적인 원칙을 따져 볼 때에, 양자는 이미 받았기 때문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줘야 돼요. 자기 생명도 아들 앞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믿는다고 해야 될 게 아녜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뭐냐 하면,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거예요. 이거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의 뜻을 이루게 해줘 가지고 예수가 기뻐한 후에 그가 나를 기쁘게 해주면 나도 그때 기뻐하겠다는 게 아니예요.

로마제국을 대신하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권을 대해 가지고 생사의 결단을…. 천만 명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가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 길을 막기 위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주기 위해서 싸우는 자리에 섰더라면, 양자가 만약 아들에게 완전히 다 주었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다 주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 아들이 쫓아낼 것이냐? 결국 양자가 아들에게 다 주었다고 해도 그것이 다 옛날의 아들의 것이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볼 때 아들이 받긴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되돌려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물론 양자가 줘서 받긴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들의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들이 양자에게 `이것을 관리하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느냐? 개인이 희생되고, 가정이 희생되고, 종족이 희생되고, 민족이 희생되고, 국가와 세계가 동원되어 희생되면서 이것을 이렇게 관리해 가지고 나에게 넘겨 준 은사를 무엇으로 갚아야 하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아들이 그것을 모르겠어요? 안다는 거예요. 그러니 `너하고 나하고 같이 살자. 네가 북쪽에 있거든 나는 남쪽에 있고, 네가 동쪽에 있거든 나는 서쪽에 있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원수권내에서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편 끝에 원수가 있을 텐데 하나님이 내 편에 계시기 때문에, 사탄은 네 편 뒤에 있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과 사탄이 같이 있을 수는 없거든요. 그렇잖아요? 사람을 놓고 서는 데는 내 편 네 편권에 서는 것입니다. 만일에 양자가 없었다면 아들 뒤에 설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양자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양자 나라가 있다면 양자 나라 끝에 사탄이가 선다는 것입니다. 또한 양자 세계가 있다면 그 끝에 사탄이는 설 것입니다. 그것이 가인의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