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예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1권 PDF전문보기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예수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지요? 이 식구라는 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중심삼은 식구가 있었느냐? 어머니가 식구예요? 예수의 가는 길과 하나된 자리에 서지 못한 그 어머니가 식구예요, 식구 아니예요? 그 어머니는 어차피, 같이 가겠어요, 갈라지겠어요? 「갈라집니다」 아버지가 그런 입장에 있으면 갈라지겠어요, 같이 가겠어요? 「갈라집니다」 형제도 갈라지고, 아버지도 갈라지고, 종족도 갈라지고. 나라도 갈라지고, 교회도 다 갈라지는 것입니다. 예수와 영영 같이 죽을 수 있는, 한길을 가야 할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자란 가정에 예수의 식구가 있었느냐? 식구라면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아내와 남편이 있고,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말로는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의 식구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있었더냐? 예수가 어머니를 사랑했어요? 사랑 못 했다구요.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아버지는 의붓 아버지였다구요. 동생들을 사랑했어요? 동생들도 사랑 못 했다구요. 그 누구를 사랑했느냐? 사랑의 주인공으로 온 장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려고 했는데 사랑 못 했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에 예수가 그런 사랑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렇게 사랑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고 가르치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예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교육하는 데는 유대교 예법을 거친 자리에서, 성전 이상을 완성한 자리에서 해야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 대신으로, 아버지 대신, 신랑 대신, 오빠 대신 사랑의 주인공으로 왔기 때문에, 마리아 가정 전체는 예수를 하나님 대신으로 모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을 대하여 '야, 요셉아!' 이래야 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가 아니라고요. 또 마리아를 대해서도 '마리아야!' 이래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육을 받아야 했던 거라구요.

그런데 그들이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어요? 인정을 통해서 볼 때는 부자의 관계였지만 천정을 통해서 볼 때는 예수가 주체이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서 왔기 때문에, 그 사랑의 도리를 따라서 그의 부모에서부터 그의 형제까지 모두 예수에게 교육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형제들은 이렇게 살아야 되고, 형제들 가운데 내 상대는 이러이러한 여자라야 된다고 교육을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그렇게 교육을 해봤어요? 성경에 그런 말이 있습디까? 이건 진잎은 다 빼놓고 떡잎들만 가지고 천국 가겠다고 야단하고 있다구요. 요사스러운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언제 아버지를 사랑해 봤느냐?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아버지,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어머니,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동생들, 혹은 형님, 이웃 사촌들이 있었더냐? 없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의 한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나라와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민족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교회와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종족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가정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느냐? 있었어요? 나라가 몰아대고, 민족이 몰아대고, 교회가 몰아대고, 종족이 몰아대고, 친척이 몰아대고,부모가 몰아대고, 형제가 몰아대니 죽을 수 밖에요. 다 잃어버리고 기가 막혀서 죽어 갔는데 나를 위해서 죽었다고요? 좋아서 죽었다고요? 이런 허황된 패들이 세계에는 많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죽여 놓고 자기들을 위해서 죽었다고…. 다 미친 것들이라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 자리에서 식구의 인연을 실현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겠어요, 안 되고 싶었겠어요? 장가가서 아들딸 낳아 가지고 일가 문중의 족장이 되고 싶었겠어요, 안 되고 싶었겠어요? 죽지 않았으면 그렇게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예수는 어디 갔으며, 남편 예수는 어디 갔으며, 아버지 예수, 가주(家主) 예수는 어디 갔으며, 형으로서의 예수는 어디 갔으며. 친척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예수는 어디 갔느냐? 예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친척은 어디로 갔으며, 교회는 어디로 갔으며, 나라는 어디로 갔느냐? 비운에 몰려 가지고 고독 단신이 되어 쫓기면서 서글픔의 길을 간 것이 예수의 행각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는 그걸 좋은 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게…. 영계에 가 보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예수 할아버지를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 할아버지를 만나야 모시지요? 예수 할아버지를 모셔야 된다구요. 그것을 못 한 것이 예수의 한입니다. 나라를 모시지 못했고, 교회를 모시지 못한 것이 예수의 한이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는 그 한을 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유대교를 대신하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그 하나밖에 몰라야 합니다, 방향을 제시 하는 데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가자고 하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되어 있어요? 「예」 그러면, 남편을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가자고 하면. 가야 되겠어요, 가지 말아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는 그 놀음 안 한다구요. 나라를 위해서 그 놀음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이북에서는 가정의 호적을 전부 다 뜯어고치지요? 그게 무엇인 줄 알아요? 사탄 세계가 먼저 하는 거라구요. 나라를 위해서는 자기 남편이니 아내니 부모니 자식이니 할 것 없이 전부 다 버리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소망의 나라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찾게 될 때, 그 나라와 더불어 부모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지 못하게 되면 피 흘리는 부모를 봐야 되고, 피 흘리는 아내를 봐야 되고, 피 흘리는 자녀를 봐야 됩니다. 그 이상 비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찾기 전에는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부모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이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