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9권 PDF전문보기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이러할 입장이 우리 통일교회, 혹은 우리 자신들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시대에 처할 수 있는 우리의 입장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고, 이 나라가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것도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되어진 것임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또, 통일교회가 이와 같은 기반을 갖춘 것도 통일교회 자체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서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통일교회의 일원으로서 처하게 된 것도 여러분 자신들이 그런 자리에 서고 싶어서 섰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있게 되고, 내가 인연된 이 자리라는 것은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있게 된 것도 통일교회 자체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국이 이와 같은 섭리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운세의 자리에 선 것도 한국이 원해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금세(今世)에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명을 해야 할 뜻의 때가 임하였다는 것도 이 시대가 요구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전부가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우리가 처해 있는 자리는 나로 말미암아 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내가 태어난 것도 나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예요?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예요? 그러한 모습을 가진 것은 상대적인 목적의 가치를 다짐짓기 위해서 오늘날 자기라는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를 위해 태어났느냐? 사람은 사람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동기가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렇게 태어날 수 있는 동기가 되는 어떤 주체가 있어서 그 주체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냐.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지백체에 있어서 눈을 두고 볼 때, 눈은 눈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몸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예요? 손이면 손은 손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보다 큰 자체를 위해서 모든 지체는 존속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통일교회가 생겨난 것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을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나라와 이 세계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혹은 이 세계가 그 자체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배후의 인연을 보다 가치 있게 연결시키기 위해서, 보다 가치 있게 하나 만들기 위해서, 보다 빛날 수 있는 가치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해서 그러한 요인의 주역을 맡게 하기 위한 그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거기에는 개인이 있을 것이고, 단체가 있을 것입니다. 그 단체는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 앞에 하나의 주도 역할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 주도 역할을 끝내 가지고 국가가 어떠한 하나의 목적 기준에 서게 될때, 그 목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세대의 세계적인 무대 앞에 새로운 주역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인간에게 보다 나을 수 있는 소망이 깃들 수 있지 않느냐.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처하고 있는 현재의 처지, 내가 존재하고 있는 현재의 입장이 나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50년이면 50년, 또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노정을 자기가 살아온 것처럼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산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 그렇게 살게 하는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산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배후를 망각하게 될 때에 인간은 고립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은 허무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에 있어서 어떠한 주체적인 책임을 추구하고, 자기 자체로 말미암아 새로운 길을 출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때는 언제나 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고독한 자리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고 내 배후에 크나큰 역사적인 동기, 섭리적인 동기, 혹은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가중된 동기가 투입된 자리에 서 있는 자기 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때는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필요하다구요. 이것이 무너지기 전에는 강한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아요? 뒤가 든든하면 강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악한 세계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 환경의 여건을 자기보다 큰 것으로 울타리를 삼고 혹은 터전을 삼고 나서는 사람은 강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혼자 덩그렇게 나서게 될 때는 위험천만입니다. 고독한 사람입니다. 일선에서 소수의 병력이 수만 대군을 맞아 접전하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 그야말로 생명이 경각에 놓여 있지만 내 뒤에 보다 강한 후원병이 진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입장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유지시키기 위한 작전을 모색할 것이고 어려운 격전 가운데에서 때를 연장시키는 작전을 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패자의 입장에서 전투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적인 승세자의 모습으로 전투에 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나만으로 출발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의 폐단이 아니예요? 자기 혼자 출발해서 이 모든 것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된 것, 나는 역사가 동원되어 가지고 여기에 증거물로 태어난 것입니다. 증거물로 제시된 자아를 발견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을 자각하고 나서게 될 때, 그 배후가 크면 클수록 약한 것이 아니라 크면 클수록 강하고 끈기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의 자각을 하기에 앞서서 역사적인 자각과 그 존재의 유래에 대한 배후의 자각을 느끼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그러한 자리에 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자각된 자리에 서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그러한 것을 느껴서 자기 스스로 자각하고 나설 때 이는 개인이 아닙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오늘 이 시점내에만 들어와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생활감정과 언제나 상대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존속해 나오는 하나님, 즉 역사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역사를 계승시켜 나오시면서 바라 나온 길은 어떤 길이냐 하면, 스스로 자각한 것에 취해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의 배후를 따라 나오시는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연결될 수 있는 역사의 방향이라는 것은 섭리의 내용을 먼저 깨닫고 그 역사를 빛낼 수 있는 시점에 선 자아를 중심삼고 자각된 입장에 선 사람이 그려 가는 생활터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섭리를 발전시켜 나올 것이고, 섭리의 뜻을 존속시켜 나올 것이 틀림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입니다. 공적인 자리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배후의 보증된 그 환경을 대신해서 나는 이러한 자격자로 섰다고 하게 될 때, 그 배후의 가치를 크게 느끼면 느낄수록 부딪쳐 오는 원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크게 느끼는 이하의 것이면 정복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자동적인 원칙입니다. 누구의 원조를 받아 가지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입장에서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념이 앞서지 못하면 무슨 일이든지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싸움에 있어서 벌써 패기가 빠져 가지고는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못 되어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패기와 자신감은 어디서 갖게 되느냐? 자기로부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 있는 국민, 민도가 높은 국민일수록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전통을 세워 왔다' 하는 자극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순간에 서 있다. 그 역사가 보다 빛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일격을 가하고, 하나의 행동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행동은 역사를 대신한다'는 신념에 사무친 결의 밑에서 나서는 무리는 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