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통해서 새로운 봄날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9권 PDF전문보기

열매를 통해서 새로운 봄날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두고 보면 섭리의 목적은 무엇을 이루려 하느냐? 나라를 이루려고 하고 세계를 이루려고 하는데, 세계와 나라를 다 이루고 난 후의 귀결점이 무엇이냐? 나라의 주권이라고 해서 보좌가 아닙니다. 결국은 사람입니다. 출발도 사람 때문에 했고 귀결도 사람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귀결체는 어떤 것이냐? 그 귀결체, 귀결된 그 자체는 역사적인 승리의 결실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는 역사의 빛이 빛나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의 빛이 납니다. 국민이면 국민의 빛이 납니다. 각 분야에 있어서 이것이 원만하게 비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갖게 될 때 결실이 되는 것이지, 그 인연을 완전히 수습하지 못하면 결실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을에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 그 감나무의 맨 끄트머리에 달려 있는 홍시가 있다면 말이예요. 지극히 외로울 것이예요. 그렇지만 그 모양은 다릅니다. 판이하게 다릅니다. 수십년 자란 나무라면 수십년 거쳐온 모든 인연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거기에는 전부 흡수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매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종합적으로 흡수된 그것이 치우치지 않게 될 때 역사시대를 거쳐 나가면서 자랑할 수 있고, 자기가 가치 있는 존재로 환영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치우치게 되면 다 찌그러집니다. 마찬가지로 결실이라는 것은 유래의 요건을 초월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6천년 섭리의 역사적 열매입니다'라고 당당하게 큰소리합니다. 거 맞습니다. 그렇다면 헤치고 보면 그 가운데는 종합된 역사의 빛이 나야 됩니다. 역사에 잃어버리고 찾지 못한 것을 새로운 가치로 수습될 수 있는 생명의 요인이 깃들어 있게될 때는, 자신이 어디에 가 있더라도 그 본색은 열매를 통해서 다음에 맞이할 수 있는 봄날의 새싹을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거기 뭐 특별히 고려니 생각이니 하는 것이 필요없습니다.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고 몰라주고 불평하고 좋아하고 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느냐? 금년이 무슨 해냐 할 때 72년이다. 이러지 않습니다. 길더라도 '일천 구백 칠십 이년이다'라고 합니다. 일천을 빼도 안 되고, 구백을 빼도 안 되고, 칠십을 빼도 안 됩니다. 1972년입니다. 그러면 오늘 맞이하는 이해는 1972년. 이것(2)의 연장이요, 이것(70)의 연장이요, 이것(1900)의 연장이요, 그 다음엔 이것(1900)의 계승이요, 보다 이것(1970)의 계승이요, 보다 이것(1972)의 계승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2년 오늘이라는 것은, 이해라는 것은 역사적인 결실의 날이고 역사적인 결실의 해입니다. 안 그래요? 결실이 못 되거든 역사의 결실을 향해서 전진하는 과정적인 한 토막의 해입니다. 이것이 길면 길수록 나쁜 것이냐?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우리 한국의 5천년 역사가 좋은 역사냐, 나쁜 역사냐? 거지 꼴이 되어 가지고는 5천년 아니라 5만년이라도 그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왜 가치가 없느냐? 한국 백성은 세계 문화사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비참한 백성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역사가 길더라도…. 원숭이 역사가 사람 역사보다 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거 가치가 없느냐? 세계 인류 문화사에 공헌될 수 있는 무엇이 없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몇 억만년이 되었어도 그것은 누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짧더라도, 단 5년이라도 역사 이래 찾을 수 없는 5년이 되었다면 여기서부터 새출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냉혹한 것입니다. 보다 나은 데서부터 보다 차원 높은 세계로 전진하려는 것이 역사적인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