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한 것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0권 PDF전문보기

천치창조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한 것

사랑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 대답할 수 있어요?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디서 시작해요? 혼자 시작해요? 혼자 시작할 수 있어요? 사랑이라는 말은 대상관계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혼자 앉아 가지고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하면 그거 미쳤다고 하지요? 배우들이 연습하면서 춤을 추고 웃고 할 때에도 거울을 보고 그럽니다. 그림자 같은 상대라도 있어야 신이 나지, 그것도 없이는 몇 번도 못한다구요.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얼굴을 보고 '요 표정이 딱 됐다'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감독이 잔소리하고 핏대를 올려도, '그까짓 연기도 내가 다 하는 거지, 뭐 어때서' 하며 그것을 표준해 움직인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연습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연습도 안 해 가지고 하다가는 '저거 왜 저리 하노?' 하면 꽁무니빼고 도망해 버릴 수도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연습한 기준이 있으면 누가 불평을 안 하게끔 내가 볼 때에도 더 잘됐다, 누구든지 잘됐다고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다구요. 그러니 상대자가 이렇게 필요해요.

그러면 하나님은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그 절대자가, 전지전능하신 분이 무엇이 없어서 사람을 창조했겠어요? 무엇이 없었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요, 없어요? 사랑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있다구요. 여러분에게도 사랑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있지마는 상대가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다고요. 상대가 없는데 작용하게 되면 손해가 난다구요. 이거 보면 전부 다 자기를 보호하게 되어 있다구요. 절대 손해나는 곳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타나면 사랑이 없는 것 같은 데도 뛰어 나온다구요. 그렇지요? 그 하나님도 사랑이 있기는 있는데, 남성적인 하나님이 가만히 혼자 있을 때는 그 사랑이 있긴 있는데 그것이 나타나요, 안 나타나요? 요건 나타내 보이지 않는 거라구요. 이것을 나타내 보이려는 상대가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뭐 세밀한 얘기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러면 본래 창조는 왜 했느냐? 창조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요즘에 뭐 윤리학에서 가치관에 있어서 선에 대한 가치관이라든가, 지정의 (知情意)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지(知)가 출발이 아니예요, 지가. 하나님이 모르면서 천지를 지었겠어요? 하나님이 목적 없이 천지를 지었겠나요? 목적이고 뭣이고 다 필요 없다는 거라구요. 거기엔 더 필요치 않아요. 이건 다 부차적인 거라구요. 무엇 때문에 천지만물을 지었느냐? 알기 위해서 지었어요? 아는 게 좋아요, 기쁜 게 좋아요?「기쁜 게 좋아요」 기쁜 게 좋지요. '내가 학박사가 되어서 아, 책을 바라보니 좋다? 그렇게 돼 있지 않다구요. 그 책을 바라보고 좋은 것은 왜 좋으냐? 상대권이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자기가 아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알게 되는 그 판도가 세계적으로 되니까 그게 좋다는 것이지, 책을 보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것은 책벌레지. 전부 다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상대적 권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보다 가치를 느끼는 데 있어서 기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왜 지었겠느냐? 기쁘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기뻐하는 데는 무엇을 갖고 기뻐할 것이냐? '야, 이 녀석아 너 하늘 천(天) 따 지(地) 해봐라' 해서 하늘 천(天) 따 지(地)를 알았다 할 때 그것 보고 기뻐하겠어요? 자, 지식을 가질 거예요, 사랑을 가질 거예요?「사랑요」그러면 뭐 지금까지 그저 세상을 살 것같이 노동해 가지고 일생 동안 그저 고생을 하면서라도 돈, 돈, 돈, 돈을…. 돈이라면 눈이 히뜩 뒤집어지는 사람들도 '너, 돈이 필요해, 사랑이 필요해?' 하면, 눈꺼벅꺼벅하지 않고, 눈 깜짝하지 않고 대답하는 말이 '사랑이지' 할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 않다면 손들어 보라구요. 그는 가짜라구요. 가짜. 개, 돼지와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엇에서부터 천지창조를 했느냐? 기쁨입니다. 정서적인 세계를 이루기 위해…. 거기에서 출발이라구요, 정서적인 세계 보다 간절히 자극을 추구하려니 설명이 필요하다구요. 목적이 필요한 거예요. 결국은 이렇게 됐다 하는 과정을 설명하려니 그런 이치가 필요하다구요. '이것이 이렇게 돼야만 진짜가 된다' 하는…. 그렇기 때문에 목적관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것은, 완성이라는 것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전부 다 정서적인 면을 중심삼고 출발하는 거예요. 지(知)가 먼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