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육적 기반을 찾아 세우려고 오시는 주님과 하나돼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10권 PDF전문보기

기독교는 육적 기반을 찾아 세우려고 오시는 주님과 하나돼야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왜, 어찌하여 메시아를 기다리느냐? 영과 육이 하나되어 국가 주권과 하나돼 가지고 세계 전체를 관리할 수있는 정상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권과 일치되어 그 사랑의 통치하에 속해서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의 본래 기준에 접선시켜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런 자리에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다시 와야 됩니다. 다시 오는 데는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망상적인 것 가지고는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 이거예요. 섭리 역사는 공론(空論)기반 위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적기반 위에 형성된다는 것을 오늘날 종교인들은 믿지 못하더라 이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금세기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가 이론적 체계를 갖춘 종교로서 세계관적 관점에서 엮어 가지고 실생활권 내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체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구요. 내가 통일교회 지도자고 책임자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역사가 무슨 역사냐?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오시느냐?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아, 구름 타고 주님이 오신다' 합니다. 구름 타고 오면 어떻게 되나? 타락 때문에 종교가 생겨났고 타락 때문에 메시아가 필요합니다. 옛날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을 때도 메시아가 필요했느냐 이거예요. 그때는 메시아가 필요 없었다구요. 그때는 직접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던 때예요. 하나님은 아버지요, 아담 해와는 아들딸이예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있어서 타락하지 않았던 때의 아담 해와와 오늘날 오시는 메시아와 가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차이가 있느냐? 마찬가지로 보는 거예요. 원칙적으로 보면 예수보다도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더 낫다는 거예요. 왜? 예수님을 보낸 것은 복귀의 한을 가지고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한 아들로서 보낸 것이지만 본연의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는 예수 이상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아들딸이라는 거예요. 아담 해와는 복귀의 자리 이상의 실현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를 대하는 것보다도 아담 해와를 대하던 것을 더 희망적이요, 소망적이요, 이상적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런 말 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죽어 보라구요, 누구 말이 맞나. 당장에 죽어 보라구요. 그래 모르겠으면 목을 떼고 죽어보라구요.

하나님은 이론적인 분이라구요. 모든 진리는 이론체계를 세운 기반 위에 서야 돼요. 그것이 역사성을 지녀야 돼요. 과거, 현재, 미래에 통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새로운 역사적 전통으로서 형성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전세계가 바라는 주님은 어떤 분으로 오느냐? 이게 문제예요. 영적인 기독교권 위에 실체적인 기독교 왕국 형성을 위해서 온다, 이런 결론이 나와요. 예수님이 몸을 침범받았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그 침범받은 육적 기반을 다시 찾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 기반의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하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돼요. 예수는 내적인 입장이고 기독교는 외적인 입장이예요.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 세계사적 기준에 있어서 메시아는, 지금까지 메시아를 중심삼고 키워 놓은 세계적인 기독교는 외적이기 때문에, 그 외적 기반 위에 하나의 중심 핵으로서 나오는 거예요. 이래서 핵 되는 메시아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의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그러므로 기독교를 보게 되면 가인형이요. 외적이예요. 오시는 메시아를 보게 되면 그는 아벨형이요. 내적이예요.

여기서 반대가 벌어지게 될 때는 역사적인 비참상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가인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벨이 침범받음과 동시에 가인의 집은 아무리 기반이 있더라도 아벨 출발 당시의 집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로 떨어져 내려간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