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것과 하나되려면 소화하는 자리에서 희생하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27권 PDF전문보기

더 큰 것과 하나되려면 소화하는 자리에서 희생하라

세상의 남자들을 보게 되면 말이예요, 예쁘장한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를 전부 다 녹여 먹겠다고 생각한다구요. 그러나 자기의 누이동생과 같이 생각하고, 자기 딸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앞서야 된다구요. 자기가 교육할 수 있는 후배로서 지도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앞서야 된다구요. 세상 남자들이 다 그래요? 그거 다 가짜니 그렇지. 이용해 먹고 차 버린다구요. 원리연구회 패들도 그런 사람 많을 거라구요. 욕심 가지고 똥구멍만 덜거덕 덜거덕 해 가지고 '이것 싫다, 저것 싫다' 한다구요. 암만 천지를 뒤적거려 봐요. 그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다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내가 열 사람 싫다고 했으면 그 절반은 우주가 싫다고 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상례입니다. 그것이 예법이다 이거예요. 내가 열 번 싫어했는데 우주가 열 다섯 번 좋아할 법이 없습니다. 우주는 손해 안 봅니다. 열 번 좋아하면 우주는 아홉 번쯤은 좋아하려고 하지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더 큰 것을 내가 더 좋아해야지, 더 큰 것이 나를 더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더 큰 것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저쪽에서 다섯 좋아하면 나는 열을 좋아해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속도를 가해 가지고 거기에 파고들어간다는 거예요. 간단하다구요, 이치는. 백만만큼 좋아하는데 내가 천만만큼 좋아하게 되면 깊이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개인은 가정 앞에 희생해라 그 말입니다. 희생하는 데는 좋아해라 그거예요. 희생하는데 눈을 뚝 불거지게 뜨고 '아이구 죽는다, 나 살려다오' 하는 것은 희생하는 것이 아니예요. 전부 기쁨으로 소화해 가지고, 감사하면서 소화하는 자리에서 그것을 맞아들여야 그것이 희생이다 이거예요.

본질적 그 원칙을 중심삼고 모든 논리체계에 의해 가지고 술어를 전부 다 수정해 나오는 거예요. 희생이 뭐냐? 눈을 뚝 불거지게 해 가지고 속으로 불평을 가지고 하는 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언제나 화할 수 있는, 언제나 동서남북 적과 화합할 수 있는 내 자신으로서 주려고, 무한히 주려고 하는 것이 희생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본성의 세계와 통한다 이거예요.

우주의 원칙은 간단하다구요. 우주가 먼저 생겨났으면 '네가 나를 따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먼저 생겨났으면 먼저 생겨난 것이 형님입니다. 내가 너를 따르겠다 이래야 됩니다. 태양이 나보다 먼저 났으니 '너는 참 훌륭했구나. 생물세계의 모든 생명을 연장시켜 나오는 데 몇 억천만 년 동안 얼마나 수고했니?'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나무 하나를 보더라도 '아이구, 넌 내가 태어난 것보다도 먼저 났구나. 얼마나 수고했니?' 그런 도리가 자연히 찾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재미, 그거 다 싫은 게 아니예요. 자연스럽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어느 궤도로 클 만큼 크게 되면 말이예요, 큰 느티나무라든가 큰 은행나무 같은 것이 서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도 그 밑에 가서 쉬고 싶어하지요? 날아가던 새도 거기에 둥지 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그거 왜? 자기의 본성이 안다는 거예요. 거기에 자기가 얻을 것이 있다 이거예요. 손해 안 본다구요. 이익이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달리 좋아하나요? 세상 말로 하면 욕심들이 있어서 그렇지요? 전부 다 선생님 껍데기를 벗겨 가려고, 선생님한테 뭐 빼앗아 가려고, 좋아서 그렇다는 거예요. 이익이 될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만 그 빛이 만물의 생명을 전부 다 배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태양빛을 좋아하지 말래도 좋아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순수한 사랑의 본질의 생명력을 아직까지 흡수할 수 있는 소성이 내 마음에 있으면, 그 본질이 찾아오게 될 때는 마음이 약동해 가지고 상대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는 맛이 나는 것입니다. 맛이 나는 거라구요. 알싸, 모를 싸?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