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되어 있기 때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1권 PDF전문보기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되어 있기 때문

이렇게 볼 때, 그러면 저세계가 필요로 하는 공통분모가 무엇이겠느냐? 이게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반드시 저세계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어디서? 지상에서. 그러려면 저세계의 공통분모가 오늘날 이 지상세계의 공통분모가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이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이상적인 사람이 되려면 두 세계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두 세계를 통해야 돼요. 우리 마음 자체, 몸 자체를 보더라도 두 세계입니다. 마음의 세계, 몸의 세계가 있다구요. 이 몸과 마음의 세계가 상충적인 입장에 선 사람은 인격자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다가도 마음이 왔다갔다합니다. 하나의 방향성을 중심삼고, 영원한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마음은 그렇게 가려 해도 마음과 반대되어 있는 몸뚱이는 다른 데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격자라 한다면 높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혹은 100년 일생을 살고 가더라도 그 가는 길이 그릇되지 않고, 높은 목적을 위해서, 그 표적을 중심삼고 가는 데 있어서 몸과 마음이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을 인격자라 하는 거예요. 그 차이예요.

그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리에 있어서 무엇을 찾아가느냐? 이것이 문제예요. 오늘날 여러분 자체를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안 돼 있어요. 타락한 결과로 하나는 영계의 초소가 되어 있고 하나는 악마의 세계, 지옥의 초소가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요. 이 둘이 평행선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주고받으며 가야 할 것인데 이렇게 상충이 되었다구요, 상충이. 평행선이 되어 서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상충한다는 거예요. 작용하면 할수록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작용을 하면 할수록 문제가 된다구요, 사람은. 사람은 전부 다 무엇을 중심삼고 작용하려고 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작용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작용하려고 한다구요.

그러니까 이것이 평행선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평행선이 되어 있으면,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 위에 또 평행선이 되어 전부 다 같이 운동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면 할아버지와 연결할 수 있는데 전부가 상충이 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평행선이 못 되고 전부 다 상충적으로 작용이 되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통을 느끼면 몸도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며칠 동안 근심해 보라구요. 몸은 자연히 근심하고 있는 마음의 영향을 받아 가지고 쇠퇴되는 것입니다.

그 쇠퇴된 자체가 된다는 건 무엇을 말하느냐? 퇴화되는 것입니다, 퇴화. 우주의 공법에 불일치하기 때문에 우주의 공법의 힘이 이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가책, 고통은 왜 오느냐? 우주의 공법, 즉 우주의 화합과 공존의 법칙에 일치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를 보호하는 우주력이 그를 제거하려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병이 나면 왜 아프냐? 왜 아파요? 의사한테 '병이 나면 왜 아프오?' 하고 물어 보면 '병났으니까 아프지' 하겠지만, 이런 논리는 형성이 안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균형을 취하여 주고받을 때에는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더 높은 차원으로. 그럴 때는 이 우주의 공법, 우주의 법칙, 천리는 그것을 지지하여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후원하지만, 그 평형적 기준이 결여된 자체가 벌어지게 될 때에는 평형을 이상으로 보존시켜야 할 우주의 공법, 천리, 천운은 이것을 전부 다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합격되었으니, 불합격된 존재는 화합과 전진의 우주권 내에 존속할 수 없기 때문에, 방해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퇴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포가 퇴화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전부 다? 나쁜 세포는 전부 다 몰아내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 우주의 힘도 공동보호를 위하여 거기에 위배되는 것은 자체적으로 제거하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존하는 우주를 바라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화합작용과 반발작용이 있습니다. 화합작용은 더 큰 데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잖아요? 화합하려고 합니다. 더 큰 데로 화합하려고 합니다. 화합하는 데는 그냥 하지 않습니다. 돌면서 하는 것입니다, 돌면서. 작은 것이 둘이 합하려면, 서로가 좋아서 합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내 자체가 자기를 넘어서 상대를 감쌀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나되는 거예요. 자기를 넘어서 큰 힘으로 품으려고 하는 것이 있어야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작게 만들려고 하는 데서는 절대 하나 안 되는 거예요. 자기를 넘어서 더 큰 것을 품으려고 할 수 있는 서로의 작용을 갖게 되면 그것은 우주력이 보호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아프다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의 모든 기관에 있어서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일면이 파괴되었는데 그것을 빨리 시정하지 않으면 우주는 '너는 현재 공존 원칙의 기준에 불합격자다' 하면서 몰아내는 거예요. 그 몰아내는 힘 때문에 아픔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러면 슬픔은 왜 오느냐? 마찬가지예요. 모든 이치가 마찬가지예요. 슬픔이 어디에서 오느냐? 왜 슬프냐? 마찬가지입니다. 내 자신이 평화스러운 경지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돼 가지고, 환경과 하나돼 가지고 우주의 더 큰 세계로 전진해 나가는 데에, 화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거기에서는 우주가 보호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우주 전체 세계에 있어서 서로가 연결되어 공존할 수 있는 연체적 작용권을 이루고 있으면 서로서로가 상응될 수 있는 입장에서 보호하여 주는데, 거기에 상반되게 될 때는 반드시 우주력이 몰아내는 것입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것을 몰아내는 겁니다. 이것이 슬픔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모가 죽으면 왜 슬프냐? 이것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부모면 부모라는 것은 오늘날 통일교회 원리로 보면, 사위기대 원칙을 중심삼고 위와 아래와 중심과의 삼단계, 위와 가운데와 아래, 이 삼단계 원칙에 의해서 주고받을 수 있는 기준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가 없어진 것입니다. 위가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본래 가정 구성에 있어서의 이상적 형, 그 공법에 일치될 수있는 기준에 결여되어 있다 이겁니다. 삼단계를 중심삼고 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센터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이 센터를 중심삼고 위 아래 전후 좌우 삼단계입니다. 그런 원칙에 서로 일치될 때는 보호받지만, 거기에 결여되게 되면 가정 이상권에 있어서의 불합격이므로 반드시 그것을 우주력이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슬픔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왜 슬프냐? 그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의 공법에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바라고 나가는 것인데, 여기에서 하나가 잘림으로 말미암아 우주공리에 불합격된 입장에 서므로 우주력이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 몰아내는 것이 슬픈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위기대의 이상을 갖추어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위기대 이걸 갖다 붙여 놓으면 3단계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자기라는 거예요. 이것을 합쳐 놓으면 3단계이지만 갈라 놓으면 6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중앙을 중심삼고 있으므로 중앙수를 합해서 7수로 잡는 거예요, 7수. 7수를 완성수로 삼는 것은 그렇기 때문입니다. 3단계의 모든 것은 중앙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