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서 제일의 소원은 사랑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8권 PDF전문보기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의 소원은 사랑

오늘 말씀의 제목이 '우리들의 소원'입니다. 우리들 하게 되면 머니까 '내 소원, 내 원'으로 하자구요. 내 원이 뭐냐? 눈을 보고 '눈아, 네 소원이 뭐야?' 하고 물어 보면 뭐라고 그러겠어요? '내 소원은 보는 것하고 웃을 때 싹 웃어 줄 수 있는 …' 눈웃음이라는 말 있지요? 눈도 웃는 다구요. 코웃음, 코웃음은 빈정거리고 안 된 것을 비웃게 될 때 웃는 겁니다. 코웃음, 입웃음, 얼굴웃음 다 있는 거예요.

눈보고 '야야, 눈아! 네 소원이 뭐냐?' 이렇게 물어 보면 뭐라고 그러겠어요? '잘 보는 것이다'라고 하겠어요? 잘 보는 것 중에 제일 좋다는 것이 뭐냐? 잘 보는 가운데 제일 잘 볼 수 있는 것이 뭐냐? '호떡집에 가서 호떡 보고 먹고 싶다' 그래요?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코보고 '네 소원이 뭐냐? '고 물으면 코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나쁜 냄새 맡기 싫다. 좋은 냄새, 향기로운 냄새'라고 합니다. 향기로운 냄새를 천년 만년 맡아 보라구요. 그 코도 말이예요, '아이구, 향기가 싫어' 할 거예요. 보는 것도 그렇잖아요? 여러분, 보는 것도 매일같이 같은 것만, 이것이 제일 좋다고 모든 것 가운데서 택해서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것을 천년 만년 본다고 해봐요, 눈이 어떻게 되겠나?

또, 입을 보고 '야, 입아! 네 소원이 뭐야?' 하고 물어 보면 입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내 소원이 뭐겠노, 맛있는 것 먹는 거지'라고 합니다. 그래 맛있는 것 매일 먹어 보라는 겁니다. 중국 요리 세 끼만 먹으면 깍두기가 먹고 싶고 고추장이 먹고 싶습니다. 서양에 가게 되면 그런 것을 잘 느끼게 됩니다. 서양 요리를 매일같이 먹게 되면 한국 된장찌개가 생각납니다. 이 된장찌개가 없으면 말이예요, 구수한 숭늉이 달고 맛있다고 하는 커피보다 낫다 이겁니다. 그래 입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 입이 천년을 먹더라도 좋고 또 좋고 또 좋고, 또 천년 만년 가더라도 좋다고 할 수 있는 그 맛이 뭐냐?

또, 손을 보고 '손아, 너는 촉감을 좋아하는 데 네가 만지고 싶은 게 뭐야?' 하고 물으면 손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보들보들한 것이다' 할 겁니다. 보들보들한 것만 만져 보라구요. 감각을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울퉁불퉁한 그런 것을 만지다가 보들보들한 것을 만져야 감각이 좋지, 보들보들한 것만 아침 저녁으로 만지면 마비가 되어서 만지는 건지 뭔지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난 그렇다고 생각해요. 난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웃음)

자, 발은 걷는 것이 소원인데 발보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하고 물으면 발이 뭐라고 하겠어요? '구경가는 것', 구경을 가더라도 자기가 구경가나요? 눈이 보지요, 눈이. 구경하면 뭘하는 거예요? 구경하게 되면 말이예요, 그 눈만 좋아하나요? 나쁜 것을 보면 얼굴이 심각해지고, 좋으면 얼굴이 웃고 말이예요, '그래, 잘 해라. 잘 해라' 이러고 있다구요.

이렇게 볼 때 나의 소원이, 나의 원이 뭐냐? 사지백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뭐냐? 여러분들은 말하기를 '뭐겠느냐?' 하면 물론 통일교회 교인들은 잘 알 것입니다. '사랑이다' 할 것입니다. 사랑이라면 사랑방을 연상하는데, 옛날 사대부의 집 안방에는 안방마님, 사랑방에는 영감님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사대부의 훌륭한 풍습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사랑이 좋은 것이냐 이거예요. 사랑이 좋은 거예요? 사랑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왜? 잘 사랑하면 좋지만 잘못 사랑하는 날에는 모든 것이 다 깨져 나갑니다.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세냐 하면 말이예요, 우주보다 더 세다는 거예요.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큰 대장부가 있어 가지고 호령하면 천하가 다 움직이는 당당한 그런 위인이 있다고 하자구요. 그 위인이 사랑의 상처를 입게 될 때는 제일 약자 중의 약자가 아니냐! 폭삭 녹아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나 폭삭 녹아 버린 사람이라도 사랑의 힘만 펌프질해서 보급해 줄 수 있으면 이게 부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말리더라도 말릴 수 없게끔 힘이 강해지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은 어떻더냐? 둥글더냐, 납작하더냐, 뾰족하더냐, 길더냐, 짧더냐, 쓰더냐, 달더냐? 이런 말들, 상반된 내용을 가지고 둥글둥글 굴러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통일교회는 사랑을 제일이라고 하는데, 사랑이 제일 좋다는데…. 그러면 진짜 우리의 소원을 따져 볼 때, 어떻게 살고 싶으냐?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묻게 될 때는, 사랑을 받고 살고 싶다는 겁니다. 이게 보편적인 관념이예요. 사랑을 받고 살고 싶다는 겁니다. 사랑은 절대 필요해요. 일생노정에 있어서 사랑을 빼 버리면 그건 무미건조한 것입니다. 모든 나무에 있어서의 진액과 같이, 우리의 몸뚱이에 있어서의 신경기관과 같이 이 사랑의 맥박이 살아 있어야만 모든 것이 원활해지고, 모든 것에 미칠 수 있는 힘이 개재할 수 있지, 사랑의 맥박이 약하게 될 때는 모든 힘은 축소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 앞에 '야, 인간아!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묻는 다면, 오늘날 신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신앙도 필요하겠지만,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믿음, 사랑, 소망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필요하고 소망도 필요하지만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다, 이렇게 말했다구요. 사랑이 왜 필요하냐? 그런 문제는 생각지 않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소원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사랑이 틀림없다는 겁니다. 인간에게 물어 본다면 그 인간이 대답하기를, 지혜를 원한다는 사람이…. 솔로몬 같은 양반은 지혜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가 있더라도 사랑을 배제한 지혜는 이미 끝장이예요. 그것은 인간 앞에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지혜는 뭐냐 하면 모든 사랑의 길을 촉진시킬 수 있고, 사랑의 길을 완성하는 데 그것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거기에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 사랑의 길을 멀게 하는 지혜는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말은 반드시 사랑을 완전한 것으로 접근시킬 수 있는 데 있어서 필요한 표시적인 말이지, 그 지혜 자체가 제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혜를 갖겠어요, 사랑을 갖겠어요? 어때요? 일자무식한 사람한테 물어 본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무엇을 원하겠어요? 「사랑」 사랑.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문제예요. 사람한테 소원이 뭐냐고 물어 보면 말이예요, 간단한 겁니다. 사랑을 하든가 사랑을 받든가 둘이예요. 사랑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랑할 때까지는 발전하는 겁니다. 사랑을 진짜 받겠다고 하는 그 자리에 있게 될 때는 망하지 않아요. 사랑을 하겠다든가 사랑을 받겠다는 마음을 언제나 가져야 돼요. 이걸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이 성립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