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재생창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9권 PDF전문보기

종교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재생창

자, 이런 얘기도 이제 그만하면 알 거예요. 그러면 언제부터 하나님이 같이 있어야 되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히…. 그래야 할 하나님, 그것을 아는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해 가지고 그렇게 못 된 사실을 보고, 타락한 물건, 타락시킨 물건, 타락한 인간들하고는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야 할 것인데 뒤집어졌어요. 뒤집어졌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있고 인간은 타락해서 뒤집어져 있는데, 이게 같이할 수 있겠어요? (시늉하시면서 말씀하심) 응? 같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반 바퀴 돌려 가지고 180도 뒤엎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할 수 없지요? 하나님이 뒤집을 수 있겠어요? 손과 같이, 하나님이 여기에 하나되려면 이렇게 해야지요. 하나님과 우리가 같으려면 이렇게 해서 같아야 되는데, 이렇게 같이 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엎어야 돼요. 180도 엎어야 됩니다. (행동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가기 위해서는 오늘날 속된 타락한 세계를 완전히 180도 뒤집어엎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은 겸해서 섬길 수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가라사대 '나 이상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이나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전부 다 나의 원수다. 네 집안이 나에게 합당치 않고, 네 집안 식구가 원수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사탄 중심해서 흥흥 하는 것이 좋겠어요? 본래 하나님이 이상으로 바라던 지성소가 아닌 지옥으로 파탄해 가는, 그림자의 형태를 그려 나가는 인간상을 볼 때, 하나님은 얼마나 기가 차겠읍니까? 누더기판이 되어 멸망의 바닥에 서게 될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청산지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을 재창조해야 됩니다. 흙과 물을 가지고 아담 해와를 창조하는 것하고 오늘날 타락한 이 세계의 인류 가운데서 아담 해와를 다시 찾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힘들겠어요? 다시 만드는 재창조과정이예요. 구원은 뭐냐?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겁니다. 타락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야 돼요. 타락해서 못 쓰게 되었으니 다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과정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종교는 뭐냐 하면, 재생창(再生廠)입니다. 재생창이 많지만 참된 재생창이어야 해요. 그 재생창 가운데 제일의 엔진을 중심삼아 심장부를 고칠 수 있는 재생창의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 종교 중에는 부속품을 고치는 종교는 있어요. 고장난 다리 고치는 병원, 다리병원이 있고 코병원, 눈병원이 있잖아요? 입병원, 귀병원이 있다구요. 심장병원이니, 무슨 병원이니 다 있다구요. 그 종교들은 한 부분만 고칩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될 수 있는 기관이 완전히 병이 났다 이겁니다, 완전히. 그거 무슨 약 가지고 나을 수 있겠어요, 무슨 약? 하나님이 원치 않으니 무슨 약을 가지고 나을 수 있겠어요? 나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 스스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재현시킬 수 있는 운동,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운동,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그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 이겁니다. 사랑하는 것이 첫째예요.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중간이면 안 돼요. 끝에 가야 돼요. 그래,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날 수 있는 진정한 마음, 하나님과 하나되겠다는 그 마음의 본성이 절대적이요, 그것으로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그것이 원리적으로 볼 때 복귀적인 하나의 기준이예요. 제일의 기준인 양심과 몸 마음을 다해 끝에 가야 하는 겁니다. 거기에서 사랑을 하는 거예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것이 첫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돈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했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은 아담의 사랑이나 해와의 사랑이나 같습니다. 동질의 사랑입니다. 남쪽 사람의 사랑이나 북쪽 사람의 사랑이나 같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 자신은 하나님의 전체 세포와 같이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발이 더러우면 냄새가 납니다. 발 구린내가 좋지 않지요? 그런데 자기 발 구린내는 그렇게 싫지 않다구요. 난 그렇더라구요. (웃음) 여러분,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안 그래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기 발 냄새를 남은 싫어해도 자기는 좋아한다는 거예요. 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에는 일체(一體)가 되기 때문에 그 냄새가 고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수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아침마다 변소에 가 뱃속을 소지(そうじ;청소)할 때도 말이예요, 그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납니까? 그래도 자기는 싫지 않거든요. (웃음) 난 그렇던데, 여러분은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잘났다 해도 안 그렇다 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을 지닐 수 없는 인간입니다, 인중지말(人中之末)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조화의 누룩은 형용할 수 없이 묘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조화의 누룩입니다. 북에 갖다 놔도 그 사랑의 보따리는 점령할 자가 없고, 남에 갖다 놓아도 그 사랑의 보따리는 점령할 자가 없어요. 그 보따리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점령할 수 있지 들어가지 않고는 …. 그 안에 들어가면 자연히 점령되는 것입니다. 이게 그런 논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