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를 갖지 못한 하나님의 서글프신 심정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9권 PDF전문보기

사랑하는 자녀를 갖지 못한 하나님의 서글프신 심정

인간과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하나님이 그 인간과 갈라설 때에 그 비통함과 억울함과 분함과 서러움이 얼마나 크셨겠느냐? 인간은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의 사랑의 기지를 바라 성숙해 가지고 평행선상에서 종횡이 결합할 수 있는 하나의 축을 이룩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그것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 천지의 모든 존재, 모든 만물의 측정 기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 사랑에 인연된 모든 것은 어디서나 다 맞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서나 다 맞게 돼 있어요, 어디서나.

어떤 동네의 오막살이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이 있더라도 지나가는 새나 동네 개들이 그 주변에 와서 똥을 싸고 머물 수 있는 입장이 되게 되면, 그 후손은 동물까지 부러워할 수 있는 부자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흥한다는 거예요. 가만 보라구요. 아이들도 그렇잖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집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전부 계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적인 인연을 지녔는데 인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분립된 거예요. 분립된 그날부터의 하나님의 서글픔과 분함을 누가 알았더냐 이겁니다. 그 얼마나 원수 같겠어요? 사랑의 배반자는 용서 못 하지요? 남편과 아내가 잘살다가 이혼하고 나면 죽어도 못 잊는 겁니다. 죽어도, 죽어도 못 잊는 거예요. 이를 갈다가 이가 깨져 나가도 고치고 와서 또 그러지요? (웃음) 몇 번씩 또 하고 또 하는 거예요.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요. 안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렸다가는 또 가는 거예요. 더 가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 인간, 여러분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할까요? 하나님은 어떨까요?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더 하지요. 더 하신다구요. 나도 저 우리 흥진군이 간 다음에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고맙구만. 한 아들, 한 딸을 내게서 데려가는 것은 나에게 큰 교육을 하기 위한 것이었구만'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 앞에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는 이 놀라운 복음, 하나님이 내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영원한 이상의 본원지라는 것, 이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수난길에서도 하나님을 동정할 수 있는 거예요.

부부간에도 그렇잖아요? 남편을 위하는 아내가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옛날에는 그런 일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말하면 말이예요, 남편을 출세시키기 위해서는 그 여자는 뭐 별의별 일을 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노동자가 되어 그저 손이 녹슨 갈쿠리처럼 형편없이 되게 일해 가지고 떡 출세시켜 놓으면 그 아내를 재까닥 차 버린 사람이 많았다구요. 그때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이건 잠깐 만나 가지고 며칠도 안 된 사람들이 이런데, 본래부터 같이 있어야 할 사랑의 인연을 가졌던 아담 해와, 그 아담 해와가 하나님 앞에서 떠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느냐? 울었겠어요, 안 울었겠어요? 하나님이 본래 세상을 울 수 있는 세상으로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흘러 나오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어…. 만물 앞에 숨을 곳도 없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도 없는 그 처지가 어떠했겠어요? 하나님은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의 본연적인 자세의 권위를 지켜야 하는 입장에 서 있어야 했으니, 참아야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느냐?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효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효자가 아니예요. 하늘 앞에 효자입니다. 자 그러니 오늘 이런 입장에서 레버런 문은 지금까지 뭘해 나왔느냐?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역사상에 그런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하나님이 마음을 같이하면서 따라오면서 내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천년 만년 역사가 흐르고, 숱한 우여곡절에 부딪히더라도 그 곡절에 상처를 받지 않고, 연면히 본심이 변하는 자리에 가지 않고 어렵더라도 도리어 하나님을 동정하면서 그 어려움이 하나님께 염려가 될까봐 몸부림치며 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오늘, 이러한 사랑의 내용을 알았으니 '나는 이러한 아들이 되겠다'고 자각해 보기 바랍니다. '나는 이러한 아들이 되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하나님 당신께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던 그 심정으로 나를 완전히 재창조하소서. 지옥에 들여놓더라도 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천국 가더라도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그 중앙에 들어가게 될 때는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있겠다는 본연의 심정을 가지고 천상천하 어디 가든지, 지옥 밑창에 가더라도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내가 눈물을 흘리더라도 하나님이 고생하고 서글퍼하는 것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지 내가 고생하는 것 때문에는 눈물을 안 흘리겠다는 결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재창조된 아담의 모습을 그리워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한, 성경상에도 나타나 있지만, 수천년 동안의 역사적인 한의 고비가 얼마나 많았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했어요? 노동자라면 노동자 중에도 제일 비참한 노동자의 자리에 가더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어느 직공이 되어 가지고 지지리 못사는 입장이 되었더라도 아들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곡절의 역사적 사연들이 거쳐갈 적마다, 사시사철 계절이 달라지는 그때마다 아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고, 아들을 데리고 아들과 함께 주관해야 할 세계를 전부 다 유람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악마가 본래 자기의 아들딸을 망하게 하는 역사를 꾸며 나가면서, 이 세계를 유린하면서 하나님 대신 영광의 모양으로 꾸려 나가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것을 칠 수가 없어요. 원수를 칠 수 없습니다. 칠 수 있었으면 벌써 쳤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으로 지었기 때문에 그 천사장을 치게 되어 있지 않아요. 그게 천리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