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적인 인연을 상속받아야 할 통일교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1권 PDF전문보기

하나님의 심정적인 인연을 상속받아야 할 통일교인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무(無)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죄로 말미암아 내 자신을 찾을 수 없던 과거의 모습이었으니 이 과거의 모습을 이제 이 시간서부터 매장해 버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자신이니 하늘이 어떠한 조건을 세워서 우리에게 축복의 명사를 세울 수 없었던 우리들이라는 것을 알고, 또 그러한 선조의 혈통을 받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자신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하늘의 긍휼만 바라며 맡기고, 선과 악의 분별된 입장을 하늘이 친히 책임져 주시는 가운데서 여러분은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편으로 옮겨 가겠다는 각오와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여러분은 현재 상태에서 앞으로 하늘이 요구하는 그 뜻 앞에 해결의 어떤 조건을 세워 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무(無)의 상태예요, 무의 상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아담가정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서럽게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리게 될 때 가인이 순종치 않고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서러움을 남겼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노아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슬펐던 사실, 함을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모세를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세례요한 혹은 예수를 중심삼고 슬퍼했던 모든 사실, 예수 이후 2천 년 동안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의 역사를 협조해 나오던 수많은 성도들이 하늘의 뜻 앞에 있어서 슬픔의 조건을 맺었던 그 원통한 사실들을 여러분 자신들이 오늘 이제부터 어느 한 때 어느 한 순간이라도 마음에서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원통하였고 분하였던 이 한 사실을 오늘 우리 자신들이 탕감하고, 분하였던 모든 천적인 한을 우리들이 제물 됨으로 말미암아 해원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자기 자신을 바치는 마당에 서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 존재로 바쳐야 되느냐? 아담의 슬펐던 모양으로 바쳐야 되겠고, 아벨의 슬펐던 모양으로 바쳐야 되겠고, 노아의 슬펐던 모양과 함의 슬펐던 모양,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세, 혹은 지금까지 역대 우리의 모든 선조들이 슬펐던 모양을 대신해 여러분이 바쳐야 되겠습니다. 그 바친 자체가 슬픔으로 보답되는 것이 아니고 슬픈 면을 탕감하여 다시 한 번 새로운 소망의 한 점이라도 내 자신을 세워서 남겨 줄 수 있으며 지닐 수 있게 세워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들이, 뜻 앞에 있어서 책임 못 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슬펐던 그 모습을 느껴 가지고…. 내 자신이 노아의 입장에서 슬픔을 절절히 느끼고, 아벨·아브라함·모세·예수, 혹은 지금까지 역대 우리 선조들이 슬퍼하였던 그 모든 슬픔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자리에 서서 하늘의 슬픔의 마음을 다시 나로 말미암아 슬프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슬픈 마음을 체휼하면서 `나는 아담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벨과 같이 되지 않고, 가인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노아나 함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세, 혹은 세례 요한과 예수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우리 통일 신도들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뜻을 대신하여 여기에 불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저런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의 모든 슬픈 면을 비교하여 슬픈 입장에 설지라도 내 자신은 슬펐던 선조들의 그런 위업을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염려를 남겼던 선조의 위치를 박차고 나로 말미암아 슬플 수 있는 환경을 돌이켜 다시 내 자신이 하늘 앞에, 선조들이 충성하지 못한 충성의 일점을 세워서 나로 하여금 새로운 면에서 하늘의 소망의 일점을 남겨 주는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만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그런 마음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런 입장에 내가 섰다 할진대는 여기에서 하늘 앞에 나선 우리들이 호소해야 할 것은`아버지여, 아담을 대신하여 당신이 주고 싶었던 심정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슬픈 마음으로 아버지는 돌아서서 갔지만, 아담을 대신하여 슬플 수 있는 입장에 섰던 나였으나 슬픔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아들이 되지 아니하고 슬픔의 자리에 설지라도 슬픔의 아버지를 내 자신이 환영하여 나로 하여금 그 심정의 인연을 다시 연결시키겠사오니 축복의 인연을 남겨 주고 가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마음은 아담만이 아니라 가인·아벨·노아·함, 혹은 역대 우리의 선조들이 그런 입장에서 하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으려 했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서러워하는 입장에 있는 하늘을 이해해 드리고 그런 하늘의 입장에 심정적 기준을 다시 한 번 연이어 가지고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져야 할 나라는 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면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선조들의 모든 슬픈 면을 제거해 버리고, 심정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이 하늘의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하지 못하였던 그 분야를 상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담가정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아담된 입장에 있지만 아담이 아닌 것입니다. 해와가 될 수 있는 입장에 섰더라도 타락한 해와가 아닌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이 아니요, 타락한 해와가 아니요, 혹은 가인과 아벨적인 입장에 섰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가인이 아니요, 가인이 죽이려고 하는 아벨이 아닌 것입니다. 노아가 아니요, 혹은 함이 아니요, 역대 여러분의 선조가 아닌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심정의 위업을 받아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담가정으로부터 아벨에게로 이것을 연결시킬 수 없고, 아벨에서부터 노아가정으로 연결시킬 수 없고, 노아가정으로부터 함, 함으로부터 아브라함,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이삭으로부터 야곱, 야곱으로부터 모세, 모세로부터 예수까지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은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 말할 수 없이 심정적으로 갈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갈라 나왔고, 노아가정에서 갈라나왔고, 아브라함가정에서도 갈라 나왔고, 모세가정에서도 갈라 나왔고, 예수님을 중심삼고도 전부 다 갈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갈라 나온 심정적인 인연을 오늘날 우리들은 아담으로부터 연결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땅 위에 있는 , 오늘날 끝날에 있는 우리 성도들 각자가 책임을 했다 하는 조건을 반드시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