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가정에서 예수를 받들지 못함으로써 연장된 복귀섭리역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9권 PDF전문보기

요셉가정에서 예수를 받들지 못함으로써 연장된 복귀섭리역사

예수가 독생자로 왔으니 독생녀 찾기 위한…. 그러면 그게 누가 될 것이냐?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친척 가운데서 택해 가지고 하늘나라의 법도에 따라 역사적인 탕감법에 의해 그 조건을 갖추어 가지고…. 요셉 가정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순응했다면 가정 안에서 마련할 수 있는 거예요.

왜 예수가 집을 나와요? 왜 나가요? 세 번씩이나 이런 뜻을 어머니한테 통고했지만 어머니는 믿지 못했다는 거예요. 마리아는 욱여싸인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혁명할 수 있는 여성이 못 되었기에 여기서부터 역사의 비운이 깃들어 4천 년 역사의 슬픔의 근거가 싹터 나왔던 거예요. 이걸 그 누구도 몰랐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소원이 이뤄지기를 고대하고 뜻의 한날을 고대해 나왔지만 30이 되도록 예수의 뜻이 그 가정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가정을 버리고 집을 떠나게 된 거예요.

만약에 여기서 요셉가정이 받들었으면 세례 요한과 세례 요한 일당이 어떻게 되었겠느냐? 세례 요한 일당이 예수 편에 서면 자동적으로 유대교는 흡수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자동적으로 예수권을 중심삼고 일치가 되었을 겁니다. 그때 예수를 중심삼고 일치되었으면 뭘했을 것이냐? 로마를 대해 싸우게 되었을 겁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아벨이요, 로마 나라는 세계적인 가인입니다. 세계적인 가인을 굴복시키는 싸움이 벌어졌을 겁니다. 죽은 예수가 400년 후에 로마제국을 굴복시키는 이런 역사를 했지만, 만약 살아서 그 일을 했으면 40년 이내에 로마를 정복하고도 남는다 이거예요.

그렇게 됐더라면 그때 세계 판도가, 지중해 일대를 중심삼은 새로운 문명권이, 예수를 중심삼은 새로운 역사적인 문명권이 기반이 되어 가지고 세계적인 천국이념의 출발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세계는 오늘날처럼 이렇게 비참한 세계가 안 되었을 것입니다. 2천 년 역사가 이렇게 흘러오지 않는다 이거예요.

가정을 못 가진 예수는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을 떠난 거예요. 집을 떠난 예수는 갈릴리 가나 잔치에…. 나사렛에서 그곳까지는 멀지 않아요. 한 25리 되는 거리예요. 갈릴리 가나 잔치 때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마리아가 와서 통고했어요. `야! 포도주가 떨어졌대' 할 때 예수가 하는 말이 `여인아,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했다구요. 어찌하여 이런 말을 했느냐? 오늘날 성경 학자들은 유대 풍습이 그렇다고….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그 말은 뭐냐? 서글픈 복귀노정에 있어서 실패의 왕자가 되어 다시 몰리는 이단자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정신을 대표한 유대교를 다시 복귀하기 위해, 유대교를 대신할 수 있는 예수를 중심삼은 복음의 터전을 다시 이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누구 때문이예요? 마리아 때문이예요, 요셉가정.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자기가 고생길을 가고, 자칫하면 십자가의 길까지 가야 하는 근거가 마리아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에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한 거예요. 그건 당연한 말이예요. 여기에 이의 있어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보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또, 동생과 모친이 찾아왔을 때 제자들이 와서 하는 말이 `주님이여, 선생님이여 당신의 모친과 동생이 와서 찾습니다' 할 때, `내 모친과 동생이 누구냐?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모친과 동생이다' 한 거예요. 이 말로 볼 때 마리아가 하나님 뜻대로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말이예요, 했다는 말이예요? 이런 성경의 근거를 보게 될 때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말한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뭐예요? 식구예요, 교인이예요? 「식구입니다」 교인은 심판의 자리에 머무는 거예요. 식구의 자리에 있으면 심판을 벗어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예수가 요셉가정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느냐? 먼저 뭘해야 하느냐? 이런 탕감복귀원칙에 의해 예수가 둘째 아담으로 태어났으면 여기에서 마리아를 복귀해 가지고 해와를 복귀하고 신부를 찾아야 하는 거예요. 옛날에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참부모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여기서 다시 찾아야 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예수가 신랑의 자리에서 신부를 맞이해서 혼인잔치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소원의 뜻이 간데없이 십자가에 돌아갔으니 그 소원의 뜻이 남아졌나요, 이뤄졌나요? 「남아졌습니다」 남아졌는데 그 가운데 무엇이 제일 중요하냐 하면 그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요, 세계를 구하는 것이 아니요, 근본 될 수 있는 뭐라고요? 「가정」 가정, 가정, 가정이 소원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가면서 후대의 기독교를 걸어 놓고 말한 거예요.

4천 년 동안에 준비된 이스라엘의 중심인 유대교는 신부의 뜻을 받들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거예요. 신랑을 맞이하게끔 4천 년 역사과정을 지내 왔지만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내쫓긴 신랑이 되었으니…. 4천 년 역사의 기원을 이어받은 유대교를 대신한 기독교는 신부의 터전을 마련하여 내가 다시 올 때, 신랑을 맞게 될 때 배반하는 신부가 되지 말고 환영하는 신부가 되라고 가면서 남긴 말이 뭐냐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말인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는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라고 하는데, 그 신랑 앞에 신부가 둘이예요, 하나예요? 신부가 둘이예요, 하나예요? 「하나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남자도 신부라고 하는데 남자가 신부가 될 수 있나요? 여자가 신부여야 돼요, 남자가 신부여야 돼요? 「여자요」 거 뭐 물어 볼 게 있어요? 여자가 되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