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기쁘게 살 줄 알아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64권 PDF전문보기

하나님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기쁘게 살 줄 알아야

그러면, 통일교회는 도대체 뭘하는 패냐?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패냐?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살자는 패다 이거예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는 데는 장사하면서 살자는 거예요? 사는 것도 여러 가지라구요. 뭘 하고 살자는 거예요? 「사랑」 사랑하면서 살자는 거예요, 사랑하면서. 누구하고? 「하나님」 하나님하고만? 사랑하면서 사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 몸뚱이와 마음이, 내 자신이 기쁘게 살 줄 알아야 된다구요. 이렇게 돼요.

몸 마음을 중심삼고 기쁘게 살 수 있는 본래 인간의 모체가 무엇이냐? 그것은 오늘 인간들이 바라고 있는 돈이 아니예요. 황금만능시대에 부르짓는 그런 돈이 아니예요. 인본주의를 주장하는, 몸뚱이의 행락주의에 전부 다 떨어져서 탄식으로 자살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그런 패망주의자들도 아니라구요. 그러면 무슨 주의자인가요? 「사랑주의자입니다」 사랑주의! 무슨 사랑? 「참사랑」 오늘날 퇴폐적인 사랑? 「참사랑」 오늘날은 사람이 결혼하는 데도 말이예요, 돈이 있으면 결혼하고 돈 없으면 안 해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을 때 '해와, 너는 결혼할 때 아담에게 돈이 있으면 결혼해라' 그랬겠어요? 아담보고 '너, 해와에게 돈 있으면 결혼해라' 그랬겠어요? 우주를 다 갖고 있는데, 사랑 가운데 우주가 다 들어와 있는데 말이예요. 사랑하여 접촉하게 되면 우주는 이미 거기에 지배되게 돼 있는 거에요. 뭘 중심삼고 산다구요? 「사랑」 사랑 중심삼고, 그게 문제예요.

이걸 볼 때 내 자신이 몸과 마음으로 갈라졌다구요. 이중인격자라구요, 이중인격자. 왜 이중인격이라고 하느냐? 하나는 종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인간이요, 하나는 횡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거예요.

사람의 양심이 곧다 하는 것은 무슨 말이냐? 종적 기준은 전부 다 같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너 양심적이다' 하는 말을 가만 분석해 보면, 얼마나 모호해요. 양심이 왜 곧아요? '저 사람은 양심이 바르다' 그건 뭘 가지고 말하는 거예요? 그건 공통적으로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인간은 전부 다 공통분모로 종적인 기준에 연결될 수 있는 양심을 갖고 있다구요. 그러니 '양심이 바르다' 하는 것은 언제나 종적 기준에 맞춰 산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야 한다는 거예요. 종적인 기준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양심이…. 그러면 양심이 뭐냐? 하나님이 찾아 들어와서 설 수 있는 기지예요. 거기에 사랑만 있으면 하나님이 언제든지 임재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위대하다는 거예요. 누구에게도 같이할 수 있다구요.

자,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아들이 한 천명 있다고 합시다. 천 명은 없지만 말이예요. 가령 아들을 한 천 명쯤 가지고 있으면, 천 명을 낳은 어머니나 아버지는 얼마나 지긋지긋하겠어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지긋지긋한 것이 뭐 얼굴을 찡그릴 정도가 아니라구요.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꾸로 뒤집을 만큼 지긋지긋한 일이지요. 그런데 천번째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하는,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된다구요.

세상에는, 타락한 세계에서는 그것이 습관성인지는 모르지만 말이예요. 부모들의 심정은 막내 아들일수록 더 사랑하지 않지 않는다. (웃음) 그게 무슨 말이예요, 사랑하지 않지 않는다. 그거 사랑한다는 말이예요, 사랑 안 한다는 말이예요?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막내 아들일수록 더 사랑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원칙이라구요. 그러면 천번째 아들 되는 사람은 더 사랑해야 되겠어요, 덜 사랑해야 되겠어요? 「더 사랑해야 됩니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은 뭐냐?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사람이 아무리 많더라도, 인류의 맨 끝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왈(曰), 참사랑이라고 하느니라 그거예요. 알겠어요? 참사랑의 개념을 알겠어요? 참사랑은 뭐냐? 주고도 받기를 원치 않아요.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이예요. 그게 얼마나 좋아요. 좋지요? 「예」 여기 아낙네들도 그럴 거라구요. 남편이 사랑하고 사랑하고, 자꾸 주고도 잊어버리고 주고 또 주려고 하고, 백 번을 잊어버리고 백 번 이상 큰 것을 주려고 한다면 그게 얼마나 멋지겠어요? 참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