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기대를 완성하면 어떻게 되느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0권 PDF전문보기

사위기대를 완성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하나되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자녀를 낳아 가지고 그 자녀와 부모와 하늘이 하나되는 데 그렇게 된 것을 우리는 사위기대라고 말합니다. 그 사위기대라는 말은 사람을 중심삼고 출발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한 말도 아니요, 해와를 중심삼고 한 말도 아니라는 겁니다. 전자를 대표해서, 하늘과 땅과 미래를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근본이라면, 원인이라면, 그것을 과거로 잡는다면 아담 해와는 현재에 해당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 아담 해와의 후손은 미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인간을 대표한 아담 해와, 그 다음에는 아담 해와의 아들딸, 여기에는 우주를 창조한 모든 내용이 전부 다 개재되는 것입니다. 원인적 동기가 되시는 하나님이 거기 개재되고, 또 창조이상을 실천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체라면 주체 앞에 영원한 대상으로 설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거기에 개재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통해서 바라는 소망이 거기에 개재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이런 상징적인 과정을 중심삼고 어떻게 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동서남북이 갖추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빼면. 그 사랑은 아담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해와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통일된 그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켜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킨 그 자리에는 아담 해와의 사랑이 있음과 동시에 아들 딸의 사랑이 개재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대상 이상이라는 말도 아담을 중심삼고 보면 하늘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사 십이(3×4=12), 12수의 대상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사랑을 중심삼은 사람들의 3 위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는 지금까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이상을 완성하려는 그런 뜻을 몰랐다는 겁니다. 뜻을 몰랐다는 거예요. 그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의 완성, 창조이상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것은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사위기대를 완성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게 마련입니다. 하늘과 땅이 비로소 정착하게 되는 겁니다. 하늘은 위의 축과 같고 땅은 아래의 축과 같아서 이걸 중심삼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녀는 중앙의 축을 향해 하나될 수 있는 평면적인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자람으로 말미암아 중앙에 올라가서 하나의 원형(圓形)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상을 두고 말하는 구형을 이루어 사랑적 이상구형(理想球形)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간이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그 인간은 이 구형권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권 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류는 참된,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실현된 그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의 사랑이 출발되었다면 그 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이 기준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기준을 중심삼고 움직이게 돼 있지 이것을 벗어나 가지고는 자기의 존재 가치, 삶의 이상향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이 원칙 기반을 중심삼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으로 말미암아 땅 위의 어디나 통할 수 있는 겁니다. 중심을 중심삼고 어디나 연결될 수 있다는 겁니다. 동서남북 사방을 중심삼고 도는 축이 있다면 그 축은 사방 어디나, 그것이 길면 긴 대로 크면 큰 대로 어디나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방향에 있어서, 자기가 독자적으로, 사랑에 일치된 그 자리에서 자기의 개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그렇잖아요? 부모님이 계시면 그 부모님의 슬하에서 많은 자녀들이 자라게 되는데 그 슬하에서 자라는 그 아이들에게는 개성이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모든 형제들이 살고 있지마는 그 형제들이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과 뿌리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주장은 아무리 어린 동생이 주장한것이더라도 형제들이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왜 무시할 수 없느냐? 부모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크나 작으나 부모님이 같이해 주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동생의 자리에 있더라도 그 동생이 부모님의 사랑과 하나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것을 인정해 줘야 되는 거에요. 또, 그것이 환영받을 수 있게끔 움직이는 것이 가정생활입니다. 문제는 부모님과 더불어 하나 안 된 자리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형님이 있고 누나가 있다면 형님의 뜻과 누나의 뜻이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부모의 뜻, 부모의 뜻은 그러면 안 됩니다. 형님의 뜻도 부모의 뜻과 연결되어야 하고, 누나의 뜻도 부모의 뜻과 연결되어야 한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 뜻을 논하게 될 때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형님으로서의 권위, 부모가 인정할 수 있는 기반에 서 가지고 주장하게 될 때는 부모 대신 형님으로서의 권한을 갖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주장을 해야 됩니다. 누나는 누나로서의 권위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동생일지라도 부모의 사랑과 하나가 되어 주장하는 데는 부모와 동위권(同位圈)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위권, 같은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랑을 중심삼은 상대적인 자리라 하게 될 때는 부모의 전권이 여기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속권이 개재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렇다'하는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나도 이렇다' 할 수 있는,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부모와 공동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부모를 중심삼고 연결된 것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과 부모가 하나의 축과 같이 되어 있다고 할 때는, 지극히 작은 사람이 주장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부모를 대표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한 자리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사람이 아닌 만물까지도 그것은 동위권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치 있는 것으로서 대등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개성진리체라는 것은 이것을 주장할 수 있는 동등한 가치적 내연, 내적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된 그 자리에서 주장하게 될 때는 아무리 작은 뜻이나 작은 물건이라도 개성진리체이기 때문에…. 그 본질이 바라는 소원이나 이상이라는 것은 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이상과 접하는 것이고, 우리 부모가 바라던 이상과 접하는 것이고, 또 우리 형님 누나가, 우리 가정이, 우리 나라가, 우리 세계가 바라는 이상과 접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