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은 불변의 진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01권 PDF전문보기

참사랑은 불변의 진리

여러분, 그렇잖아요? 세상에서 '너, 뭘 하고 싶니?' 하면 '나, 대법원 판사 하고 싶다' 그럽니다. 판사라고 하면 다 좋아하지요?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신앙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천지의 대주재인 동시에 선악을 가려 가지고 선한 사람은 천국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보내는, 천지를 공의의 법을 통해서 다스리는 재판장이다' 하는데, 그 재판장이 좋아요? 지금까지 역사 이래에 수천억의 사람을 지옥에 보냈다면 그 하나님의 마음이 좋겠어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보좌에 앉아서 공의의 심판장의 권한을 가지고 행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생활 목표가 안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그런 것은 싫다 하는 거예요.

아까 말했지만, 판사가 판정을 해 가지고 사형을 시키게 될 때는 반드시 현장을 검증하는 거예요.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대한민국의 헌법을 중심삼고 그를 사형시키지만 만약 그가 북한의 간첩이라면 북한에서는 애국자입니다. 안 그래요? 미국의 법과 대한민국의 법과 소련의 법이 달라요. 180개 이상 되는 모든 나라 나라의 법이 전부 달라요. 이렇게 볼 때 사형을 시키는, 생명을 이 존재세계에서 제거하여 최후의 운명길을 가게 하는 그 나라의 법이 절대적인 법이 아니다 이겁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재판장이면 재판장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아하, 이 땅을 벗어나면 내가 저 사람같이 되는구나!' 할 거예요. 안 그래요? 땅에서 이런 놀음을 했다면 '이 지상이 옳지 못한 세상이라면 옳은 천국이 있다면 그 천국에 가서 내가 저와 같은 일을 당하겠구나' 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 어디에서나 살아 남을 수 있는 이러한 공의의 길, 참된 길이 필요한 거예요. 만약에 이 나라에서 희생을 당하더라도, 나라 법에 위배되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영계에 가게 되면,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한 나라의 법에 위배된다고 해서 희생을 당하더라도 우주의 공법을 중심삼은 인간으로서 가야 할 단 하나의 공식적인 길을 중심삼고 볼 때 참된 길에 섰다 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 가게 된다면 정의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땅에서 재판하던 판사를 잡아다가 영계에 가서 재판해 가지고 사형장에 보낼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참된 길…. 참된 길! 진리다! 진리가 참된 이치 아니예요? 참된 이치가 뭐냐?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경제를 중심삼고 일생을 바쳐서 일하는 사람은 '돈! 돈이 참된 것이다!' 그럴 것입니다. 죽으면 돈을 가지고 가요?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가지고 가지만 돈은 못 가지고 가요. 지식 가지고 가요? 못 가지고 갑니다. 권력 가지고 가요? 못 가지고 가는 거예요. '내'가 죽지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할 때는 이 생명을 저 세계까지, 영원한 세계까지 가지고 가서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는 그런 말은 가능해요. 그러면 영생할 수 있다는 근원된 이론을 세울 수 있는 참의 중심이 뭐냐 하게 될 때 그 참의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영생하겠어요, 며칠 살다 죽겠어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더우기나 이 문씨 종중들, 날 종장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좋아해요? 문총재가 좋아하는 것은 딴 것이 아닙니다. 참된 길, 진리의 길을 좋아해요. 진리가 뭐냐? 돈을 벌겠다는 사람은 돈을 중심삼은 진리, 그다음에 학식이라면 학식….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했댔자 절대적인 자리에 못 서는 거예요. 변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의 이론이든지 전부가 변해 나가지 않아요? 자꾸 변해 나간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에게서 제일 가깝고 제일 좋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영원히 변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있어서 제일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암만 좋아도 멀리 있으면 안 돼요. 나에게 제일 가깝고 내 생명과, 내 근본과 하나될 수 있는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을 갖고 사는 '나'라고 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부럽겠어요?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를 극복하고 환경을 소화할 수 있으면서 주체성을 기를 수 있는 그런 것이 뭐냐? 참사랑이 그것입니다.

참사랑이 있게 될 때는 그 참사랑에게 다 가려고 합니다. 눈이 그리로 가고 귀도 그리로 가고 코도 그리로 가고 입도 그리로 가고 손도 그리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오만가지 잡동사니의 사랑이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눈과 코와 입과 귀를 포함한 오관이 초점을 맞추겠다고 이러면서 찾아가는 것이 사랑 아니예요, 사랑? 아내지요?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대상을 보게 될 때 눈은 이리 가고 코는 이리 가고 손은 이리 가고 입은 이리 가고 그래요? 오관이 전부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안 그래요, 여러분들?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모든 오관 자체가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그 핵, 상대적 가치의 참것이 무엇이냐 할 때 이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자의 형태가 좋아서라기보다 사랑이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에, 여자와 사랑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체를 점령하려니 여자를 점령하는 데는 전부가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