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주체가 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24권 PDF전문보기

더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주체가 돼

그거 왜 그래요? 하나님 자체가 자기를 무시하고 상대를 위해서 투입만 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태어난 것 자체부터 위하여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자기 하나만 가지고 있다면 완전히 수수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가지지 않고, 위해서만 존재하게끔 되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속한다는 것은 원래 사랑의 세계에는 없습니다. 더 투입하여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이 주체가 됩니다.

자, 여자와 남자가 함께 생활하는 경우에, 어느쪽이 더 많이 불평을 하고, 머리를 흔들고,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존재예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여자입니다. 남자는 뾰로통한 얼굴을 해 가지고 시무룩해 있지 않는다구요. 바람이 불더라도 불지 않은 체하고, 조금 문제가 있더라도 문제가 없는 체합니다. 반면 여자는 벌써 바람이 불면 빨간 옷으로부터, 검은 옷으로부터 그저 갈아 입고자 합니다. 그리고서 바람이 불고 엉망진창이 되면 `화장하자!' 하고는 항상 변화합니다. 게다가 잔소리를 합니다. 그러한 모체는 남자보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입은 나팔의 왕녀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본 여자들을 전국에 5분의 1 정도 배치하면, 남자에게 선전시키는 것보다 10배 이상 선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거예요. 선전 효과가 백 퍼센트입니다. 정말이에요. 5천 명, 6천명이 60만이 될 거라구요. 6천의 백 배면 60만이지요?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민족이 60만이었던 것같이, 일본의 상대권인 여자 60만의 입을 열어 매일 작용시키면 일본 땅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정말이라구요. 그게 전부 다 `어머님, 아버님, 부모님!' 하고 나오면 큰일나는 거예요. 이제 그렇게 됩니다. 방송국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신문사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이 이상의 포스터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머리 좋은 사람이라구요. 그거 고맙지요? 「고맙습니다.」개미 10마리가 그것을 쑤실 때까지는 달려가는 거예요. 말을 걸라구요. 알았어요?

위하여 살아야 됩니다. 사랑의 상대자는 자기 이상의 것을 바라기 때문에…. 백을 가진 하나님이 백을 투입했다고 하면, 자기와 같은 상대밖에 안 나옵니다. 하나님 자체로부터 자기보다 나은 이상의 상대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백을 투입하고도 멈추지 않고, 또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백 이상을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몇백 배, 몇천 배 이상으로 귀중한 상대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본질적인 원소, 내용의 원소적인 위치는, 그 출발의 시작은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관념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중에 자기를 위하여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을 절실히 원한다면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 갓난 애기는 그 가치로부터 말하면 얼마 안 돼요. 갓 태어난 핏덩어리 같은 애기를 위하여 부모는 전심을 기울이는 거예요. 옛날에 애기가 없을 때는 회사 끝나고 저녁이 되면 술집으로 가서 한잔 마시고 늦게 들어오지만, 애기가 생기면 일찍 보고 싶은 마음에 돌아오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술집 따위는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좋은 것이 있으면 사 가고 싶어지고, 그렇게 하여 자기의 모든 환경을 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아버지라도 사랑의 방향을 향해서는 자기의 존재 의식을 잊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 의식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소속 의식을 가지면 안 됩니다. 자기가 싫다고 하면 큰일납니다. 그것을 잊어버려야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자기가 아니고 상대를 위하여 투입하게 되고, 참된 상대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기의 존재 의식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러한 내용을 밝히고, `모든 존재는 위하여 존재한다.'라고 하는 철학의 결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위하여 살고, 위하여 존재하고, 위하는 존재입니다. 위하여 사는 것은 무엇을 중심한 거예요? 사랑을 중심한 것입니다. 사랑은 위하여 투입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참남편은 자기 아내를 위하여 돈은 물론 모든 것을 투입합니다. 생명까지도 투입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뿌리인 사랑까지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아침 저녁으로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남자는 참남편입니다. 참된 남자입니다. 또 그러한 부인은 참부인, 참된 여자입니다. 그래서 좌우, 좌현과 우현을 일체화시키는 길은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여기에 멈춘 중심점은 모두 위하기 때문에 텅 비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