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지우는 생활을 하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33권 PDF전문보기

빚 지우는 생활을 하라

적당히가 안 통해요. 적당히가 안 통한다구요. 이 지상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영계에 가도 그래요. 딱 이름만 대면,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이면 영계에 명단이 다 있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했나 하는 것을 딱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계와 지상이 틀리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거짓말이 안 통해요. 그러면 기가 막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루하루 빚진 생활을 하지 말라구요. 빚 지우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빚져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빚져 가지고는 안 돼요. 빚지면 전부 다 돌아서는 것입니다. 돌아서 가지고는 움직여야 돼요. 뒤로 돌아 어디로 갈 거예요?

아까 말하던 여성시대라는 것은 처음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처음이에요. 두 번도 없는 여기서부터 출발한 거예요. 제25회 올림픽 마라톤대회가 있다 할 때 이것은 처음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안 오는 거예요. 그런 역사적인 초점 앞에 소명을 입어 가지고 나타난 몸이라는 것은 찬양할 수 있는 몸입니다. 뽑힌 자체는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국민 앞에 빚을 많이 남기고 가는 탈락자는 누가 동정을 안 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성시대는 선생님이 선포한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선포를 해 줘야 돼요. 어머니가 못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왜 그러냐? 아담이 책임분담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주관성 전도를 했기 때문에 아담은 주관성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거꾸로 지배를 받았던 모든 것을 탕감해 줘야 돼요. 하나님으로 보게 된다면 사랑으로써 배반한 아내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앞에 얼마나 큰 심정의 상처를 주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날에 하나님을 버리고 원수한테 끌려가서 간부(姦婦)가 되어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살던 것을 다시 본연의, 그런 흠이 없는 자리로서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할 때에 어머니를 위대한 어머니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해와보다도 더 훌륭한 어머니로 만들어야, 해와로 말미암아 상처받았던 억울하고 비통한 하나님의 심정의 흠을 메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가정이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 아들을 망쳐 버린 것입니다. 아들을 망쳐 버렸고, 그 다음엔 오빠를 망쳐 버렸습니다. 그렇지요? 오빠를 망쳐 버렸고, 그 다음엔 남편을 망쳐 버렸지요? 그 다음엔 아버지를 망쳐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4대 심정을 유린했습니다. 이것을 완성할 수 있는 기준을 하나님이 소원해 가지고 하나님이 지상의 어버이로서 등장할 수 있는 기준을 삼아서 사랑의 중심으로 되려고 했던 것이 파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일을 누가 했느냐? 선생님이 해 왔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던 아들로서 완성하지 못한 것을 해와를 시켜 가지고 아들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교재를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교재를 이 땅 위에 남겨 주지 못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엔 하늘 가정에 있어서 형님으로서, 오빠로서 이래야 된다는 교재, 하나님의 마음 속의 사랑의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 교재, 그런 내용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이거예요. 또, 남편은 이래야 된다는 것이 전부 다 문서화되어 가지고 교육할 수 있는 교재의 내용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라는 것은 이래야 된다는 그것이 전부 파괴되었다구요.

그러한 내용을 선생님이 대표해 가지고 모든 것을 다시 재현시켜서 교재로 기록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생애를 거치면서 고개를 다 넘어야 돼요. 아들의 심정적 완성 기준을 넘어야 되고, 오빠의 심정, 형님의 심정 기준을 완성한 기준을 넘어야 되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소원하던 그 기준을 넘어야 되고, 어버이로서, 아버지로서의 이 땅 위의 심정 기준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에 대해서 하늘에 물어 보면 통곡을 시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자기 아들딸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심정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원수의 아들딸을 자기 아들딸 이상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심정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는 가슴 아픈 일이라는 것입니다.